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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안에서의 '쉼'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3 조회수1,171 추천수5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칼과 비비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오늘 강론의 주제는 '쉼' 입니다.

 

지친 제자들이 오니까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가서 따로 좀 쉬자.’

 

여러분은 쉼에 대한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게 떠오릅니까?

피정

편한 것

힘들었던 일

촌 동네?

좋은 공기

힘든 일~

사람마다 ‘쉼’ 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이 다 다를 것 같아요.

 

저 같으면 바다를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쉼’ 하면 강릉 경포대바다가 떠오릅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거기를 부르르 달려가서 바다를 쳐다보며 저 나름대로 힘을 얻습니다.

 

인간에게는 휴식이 꼭 필요합니다.

 

쇠로된 기계도 오래 쓰면 나사가 흔들리고, 기름이 말라붙고, 오일이 다 빠져버리고 고장이 나는데,

쇠로된 나팔도 몇 년을 불어제끼면 나사가 흔들려서 소리가 안 나는데

약해빠진 사람에게 휴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창조주 하느님이 잠을 잘 수 있게끔 섭리를 하시지 않았는가?

산도 나라에서 안식년을 정하죠?

‘일 년 동안 이 산은 못 올라간다.’

그래서 산도 쉬게 만들어요.

 

사제들도 안식년이 있습니다.

교회법에 보면 10년마다 사제들도 안식년을 청하라.

 

 

그러나 저는 사제로 26년을 살면서 아직 안식년을 한 번도 청해보지 못했어요.

그 중에 제일 큰 이유는 피정강의가 계속 몇 년씩 밀리다보니까 중간에 해외 나가서

안식년을 하다 돌아올 수도 없고 그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전 포기했습니다.

'죽으면 영원히 안식년인데 그렇게 살자.'

 

 

또 다른 이유는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웃으시겠지만 개 때문에 안식년을 못합니다.

누가 버린 개까지 주워서 키우다보니까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서 큰 개들도 몇 마리가 있고.....

한 달 정도야 누가 맡아 줄 수 있겠지만 1년 동안 그 많은 개들을 누가 맡아서 키워줍니까?

개 키워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개 때문에 어디를 못가요.

우리 동료신부님들 개 때문에 안식년 못한다 하면 저보고 제정신 아니래요.

그런데 실제로 개 때문에 저는 어디를 못 가요.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내 목을 들여다보고

‘신부님 이러면 목소리를 잃어버리십니다. 늘 목이 만성후두염으로 벌개져 있으니까

그 좋은 목청 이러다가 버리십니다. 목도 안식년을 하셔야지,..

신부님 이거는 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목을 쓰지 말아야합니다.’

‘목도 그분이 쓰실 만큼 쓰시겠지.....’

하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늘 미사 때는 목에 늘 뭐가 걸리는 것 같고

편치가 않습니다. 아무튼 사람이나 기계나 반드시휴식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피곤에 지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함께 가서 쉬자고 하셨을 때의 그 쉼은

분명히 단순한 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일로부터 물러나서 몸을 쉬도록 하는 휴식이 있습니다.

이때는 잠도 필요하고, 음식도 필요하고, 때로는 음악도 필요하고, 가벼운 운동도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지친 육신에게 쉼을 주는 것이 일상적인 쉼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더욱 힘들어지는 그런 휴식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육신의 쉼만이 아니라 영적인 쉼이 아니겠는가?

 

 

두 번째, 영적인 쉼이 있습니다.

이것을 Resting in God, 하느님 안에서 쉼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쉬고, 하느님 앞에서 쉬고,

다시 말하면 하느님 앞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겁니다.

하느님의 포구 안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겁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은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려 기를 다 빼앗기고 파김치가 돼서

나중에는 손가락하나도 까딱할 수 없게 되십니다.주님에게 있어서

쉼이라는 것은 육신의 쉼보다 성부로부터 영적인 힘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聖父안의 쉼’

밤을 새워가면서 성부께 기도하셨다는 모습을 우리들은 성서 안에서 자주 봅니다.

소비적인 휴식이 아니라 창조적인 쉼을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하셨던 겁니다.

 

 

지혜서와 코엘서를 보면 ‘때’ 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쉴 때가 있으면 일할 때가 있고

나서야할 때가 있으면 물러서야할 때가 있고

나타나야할 때가 있으면 뒤로 숨어야할 때가 있고

말해야할 때가 있으면 침묵해야할 때가 있다.

이 말을 요약하면 능동의 때가 있으면 수동의 때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영혼의 쉼’ 이라고 하는 것은 ‘능동의 때’가 아니라 바로 ‘수동의 때’ 입니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사람들을 치유하고, 구마 시키고, 하느님나라를 설명하시며

능동의 때를 active하게, 적극적으로 사시다가 밤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동의 자세로 들어가셔서 온전히 성부 앞에 기도의 닻을 내리셨습니다.

 

 

넓게는 3년 동안 능동적으로 활동하셨고, 게셋마니에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신앙적인 단어로 얘기하면 수난의 상태로 들어가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잡혀가시고, 모욕당하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18시간동안 주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침 뱉고, 조롱하고, 손가락질하고, 가시관을 눌러도 주님은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3년 동안 공생활을 하실 때, 그 어마어마한 권능을 보이시면서 일으키셨던 기적의 주인공 같지 않게

예수님은 그야말로 완전 수동의 상태로 들어가고 고난의 상태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쉼은 '포기의 시간' 이라고 부릅니다.

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거리적으로 물러서서 하느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를 포기하고, 일을 포기하면서, 은총을 통하여

내 안을 하느님으로부터 채워나가는 것이 바로 '영적인 쉼'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채워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정도 하느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 안에서 쉴 수 있는 것,

하느님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것,

그분 안에서 나라고 하는 것은 전부 없어지고 온전히수동의 상태로 그분 안에서

완전히 포기의 상태가 돼서 온전히 영적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미사에 오셨잖아요?

이 미사에서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미사에 온 것 자체도 우리가 걸어서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불러서 온 것이고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전달이 될 때도 성체가 여러분에게 갈 때도 여러분이 잘나고 능력 있고,

당연히 말씀을 받아들일 태도가 되어있고, 성체를 영할 자격이 있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온전히 수동입니다.

 

예수님께서 18시간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성부의 뜻을 따라서 수난당하셨듯이

우리들은 미사 중에 하느님으로 온전히 채워나갑니다.

 

미사 오기 전에 일주일 동안 사람으로 가득 찼던 영과 육속에 말씀이 들어오시고,

성체가 들어오셔서 그것들을 밀어냅니다.

어둠으로 가득 찼던 한주일,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찼던 그 한 주일을 미사를 통해서 빛이

들어옴으로써 겟세마니에서 성부로부터 힘을 받았던 예수님처럼 이 미사 끝나고 나서 나갈 때는

‘그래, 다시 한 번 한주일 동안 기를 쓰고 살아보자.’

‘그래, 그 미운 놈 위해서 기도 한번 시작해보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보자.’

‘그래, 죽는 게 이기는 거다. 내가 먼저 죽어보자.’

 

 

주님 안에서의 쉼은 피정이 있고, 미사가 있고, 성지순례오신 분들...

그리고 성체조배, 영적독서, 바로 이런 것이 주님 안에서의 쉼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동적인 휴식입니다.

 

어느 통계에 나오듯이 "주일미사 왜 나가십니까?" 물었을 때 약 70%가

"고백성사 보는 것 부담스러워서 주일 지킵니다."

“주일 빠지면 성사 봐야 되니까 기를 쓰고 성사보기 싫어서 나갑니다.”

이런 자세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부르셔서 하느님 안에 내 기도의 닻을 내리고, 내 안의 어둠이

말씀과 성체로 치유되고, 구마 됨을 믿으며 주님 안에서 쉬었다 나감을 믿도록 합시다. 아멘

 

 

 

  ♧ 2009년 7. 19일 - 연중 제 16주일 (느티나무신부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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