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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보는 깨끗한 마음은 행복하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7 조회수1,079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는 '예수님이 없는 교회' 이다 [예수라는 원천]
 
 
 
인간이
 
이데올로기 중심으로 
 
예수라는 원천에 까지 끌어 올렸더니
 
예수님은 없었다
 
예수님이 없는 예수
 
그는 교회이지만
 
예수님이 없는 교회
 
이다
 
 
 

말씀이 인간을 해석하신다 [칼 바르트 신학언어]

 
 
개념에 의하여 대상을 사유하는 것이라면 계시의 사유도 다른 일반 대상의 사유와 형편이 크게 달라질 수 없으리라는 추측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만큼 두 사유 사이의 거리는 가깝다.
 
그리고 '하느님의 진리의 순환' 이란 명제를 주제화 할 수 있다는 것이 '하느님의 진리'를 '인간의 진리'로 만들려는 유혹과 구분되어야 하는 필연성을 바르트는 말하고 있다.
 
이는 믿음의 시련과 연관되어 있다. 신앙이란 결코 값싼 믿음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참된 신앙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위한 영적투쟁의 원천인 것이다. 이 말은 하느님 인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으로 드러나시는 곳, 하느님께서 하느님으로 말씀하시는 곳, 인간의 사변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세계, 하느님의 진리가 우리의 사유를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 진리에 대하여 사실적이며 존재적 진리임을 증거할수 있을 뿐 사유의 초월성에는 대단히 주의하여야 한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인간의 한계와 하느님의 진리를 알게 하는 참되고 영원한 경계에 대한 올바른 언어의 발견은 그리스도론 적으로 그리스도론의 문장들의 안이나 밖이 아닌 결국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게 된다. 둘째, 타는 목마름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자리를 지켜 나가면서 구체적이며 분명하게 이 세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화해이며 하느님의 진리이다. 이 화해와 사랑은 막힌 것을 뚫는다. 신학적 언어는 인식론적인 문제를 실천적인 진리에로 옮기는 진리의 문장이어야 한다.

이렇게 신학 안에서 인간의 언어로 자신을 전달(계시) 하시는 하느님은 인간 가운데서 인간을 통해서 길을 내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섬김은 인간에 대한 봉사가 되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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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늘 성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와 완전히 일치하여 사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 아버지의 눈길 아래에서 살도록 초대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693>

교리교육의 첫째이자 마지막 기준은 언제나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신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들 안에서 당신의 약속을 실현하시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그분께서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여 그들의 품위에 합당한 일을 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698>

"지체들이 머리에 속해 있는 것처럼 그대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섬기고 찬양하기 위해 그대의 모든 것을 당신의 것처럼 쓰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성 요한 에우데스, '천주의 성모의 놀라운 성심'>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신비와 그 사랑의 신비를 알려 주는 그 계시 안에서 인간을 바로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고 인간에게 그 지고의 소명을 밝혀 주신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701 사목헌장 22항>

그리스도께서는 수난하심으로써 우리를 사탄과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서 사는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스도의 은총은 죄가 우리 안에서 훼손한 것을 회복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708>

 

인간이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인간을 해석하시는 것이다

성경 말씀 그 언어 자체보다는

그 말씀의 언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먼저 볼 수 있서야 한다

'말씀이 사람 되신' 주님께서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말이나 하느님에 대한 사유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느님에 대한 말씀 가운데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느님을 "마치 하느님과 같이"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스스로 사유하는 길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은 어떤 길인가? 성서 안에 하느님을 사유하는 길이다. 성서를 성서로써 하느님의 계시를 담은 책으로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하느님 홀로 하느님을 온전히 아신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52> 죄는 인간이 하느님보다 인간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하느님을 무시하고 거스리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398> "성서를 성서로써 하느님의 계시를 담은 책으로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백인대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 = 백인대장은 신학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말씀의 언어 안(이면)에 먼저 주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 가운데 계시도록 자신을 비워 드린다면 피조물의 눈물과 아픔은 사라지게 된다. 인간이 말씀(주님)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주님)이 인간을 해석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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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을 보는 깨끗한 마음은 행복하다.  [두 글의 해설]
 
 
하느님을 생각하다 = 하느님을 사유하다
 
이 말의 뜻은 
 <하느님에 대한 말과 생각>을 사유하는게 아니라
계시하시는 <하느님> 자체를 사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경을 계시책으로만 보는게 아니라
 성경 안에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성경의 말씀(진리)만을 떼어 와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말씀(진리)들을 인간 자기의 이념으로 변질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 = 이념...이다. 라고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과연 사람이 하느님을 두려워(경외) 한다면 
 (..........그가 참된 신앙인이라면)
 
하느님 없이
성경 말씀(진리)만을 인간에게 떼어 올 수는 없습니다.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보는 것이
바로 백인대장 입니다.
  
주님부터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만 해달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있기 전에 하느님(주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교회 = 예수님 없는 진리 입니다.
예수님 없는 생명 입니다.
예수님 없는 평화 입니다.
예수님 없는 사랑 입니다.
 
그래서 이런 거짓된 신앙 안에서는
 
사랑 타령만 한다며 이념을 강조하며
주님 타령만 한다며 이념을 강조하며
평화 타령만 한다고 이념을 강조하며
미사 타령만 한다고 이념을 강조하며
교회 타령만 한다고 이념을 강조하게 됩니다.
 
 
자신이 교회이더라도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 (내 = 교회 : 죽은 언어)가 됩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 (내 = 교회 : 죽은 언어)가 됩니다.
 
예수님이 없는 생명과 평화는 ''죽은 언어''로써
이념에 몰입된 거짓된 평화와 생명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고 죽음이 있으며, 평화는 없고 악을 수용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념만 남고 사람은 없애어 버립니다.
 
 
예수님이 없는 예수...를 바라볼 수 있을까요 ?
 
그 예수는
이념으로 만든 예수인데
인간의 거짓된 신앙이 그 영혼 안에 침투하여
만든 ''허상의 예수''인 것입니다.
 
인간이 예수님 없이 (하느님을 볼 수 없는)
이념으로 창조해 낸 예수이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게 무엇일까요 ?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념(초보수주의, 진보이니)으로만 보는 눈으로는
주님을 말씀보다 먼저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는 교회이지만
예수님 없는 (주님을 볼 수 없는, 하느님 없는) 교회입니다.
 
 
주님을 보는 깨끗한 마음은 진정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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