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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영성이란 무엇인가? - 로널드 롤하이저 -
작성자최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31 조회수461 추천수4 반대(0) 신고
 
 
 1. 영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신(神)들로부터 광기(狂氣)를 받아 생명의 불이 지펴진 존재들이다.
그 광기로 우리는 위대한 사랑을 할 수 있으며, 광기의 불씨를 영원히 존속시키며,
거룩한 존재를 관상할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다. - 플라톤 -
 
 욕망, 우리의 근원적인 병폐
 
  살아가면서 평화를 만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내면 속에는 어떤 리듬 같은 것이 있어서, 영원히 쉬지 못한 채 만족하지 못하며 좌절하며 고통스러워 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지나친 욕망에 완전히 짓눌려 잠깐 동안의 휴식도 취하러 가지 못한다. 욕망이란 언제나 만족보다 더 강한 법이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완전한 평화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며, 꺼지지 않는 불꽃인, 불안이 우리 내면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욕망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골수(骨髓)에, 그리고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늘 불안해 하며 쉬지 못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태평한 사람들이어서, 어쩌다가 한 번씩 마음 속의 평정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 반대의 경우도 사실이다. 즉 우리는 목적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며 영원히 무엇엔가 사로잡혀 선천적으로 불안해 하며 조용히 절망의 삶을 살면서 아주 가끔씩만 평화를 맛본다. 욕망은 우리에게 음료수를 휘젓는 빨대와 같은 것이다.
 
 모든 위대한 문학과 시, 예술, 철학, 심리학 그리고 종교에서는 중점적으로 이 욕망에 대하여 분석하고 있고 각기 나름대로의 명칭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리지외의 데레사(Therese of Lisieux, 소화 데레사) 성녀와 에티 힐섬(Etty Hillesum, 1914-1943)의 저널을 보는 것처럼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잊지 못하기도 한다(☞스스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걸어들어가 동족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 여성 에티 힐섬은 내면적(內面的) 삶만 있다면 수용소 철장 안에 있든 철장 밖에 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으며, 내 삶이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여, 나에게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나이다. 그것은 당신이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것, 우리가 당신을 도와야 한다는 것, 우리는 당신을 도우면서 결국 우리 자신을 돕는다는 것이옵니다나는 당신의 해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마 당신이 나중에 우리를 불러 해명하라 하시겠지요.하고 일기에 적었다).
 
욕망은 우리를 자극하여 활동하게도 하지만 영혼을 휘저어 놓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과 성(性)과 방랑벽과 애틋한 향수(鄕愁)와 끝없는 야망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 등과 같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세속의 사상가가 이러한 불꽃을 갖고 있었으며 우리를 사로잡았던 바로 그 힘이 그들 사고(思考)의 주된 특징이었다.
 
 예를 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우리의 삶을 불태우게 하고, 우리가 아무리 맹렬하게 좇아가도 붙들 수 없을 만큼 끝없는 쾌락을 추구하게 만드는, 그리고 초점도 없이 타오르는 불꽃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프로이트에게는 모든 사람이 삶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절망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고, 제국주의자처럼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도록 요구하고 있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는 원초적 에너지에 대하여 칼 융(Karl Jung)은 말하고 있다. 융은 에너지는 우호적이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밤에 잠을 자지 못할 때마다 우리는 융이 말한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하게 된다.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은 우리 속에 사랑과 성(性)과 미움과 예술과 정치를 위한 수 천 볼트의 전기가 있다고 말하였다. 또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도 우리 속에 있는 푸른 불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에 너무 단단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연의 가르침, 인간의 교육 중 어느 것도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지 못하게 하며, 저 너머 어딘가에서 온, 끝없이 요구만 하는 영(靈)들인 귀신들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 짓게 한다고까지 말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좀더 가까이 다가가 깊이 이해해야 할 어떤 야성적인 에너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 학자들은 남자라는 늑대와 함께 달리는 행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고, 남성 학자들은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의 여정(旅程)과 배꼽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또 뉴 에이지 운동가들은 우리 스스로 행성(行星)의 움직임을 그려보고 자신에게 맞는 행성에 머물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표현이야 어떻든 사람들은 결국은 모두 꼭 같은 내용 즉 인간 경험의 한 복판에 서서, 다른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재촉하는 힘인, 꺼지지 않는 불(火) 즉 불안, 갈망, 동요, 욕구, 고독, 끊임없이 몰려오는 향수(鄕愁), 길들여질 수 없는 야생성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불안은 어디에나 있다. 욕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욕망에는 다양한 분위기와 형태가 있다. 어떤 때에는 욕망은 우리에게 고통(불만과 좌절 그리고 두통 등)으로 다가오며 또 어떤 때에는 욕망은 심오한 힘, 아름다움, 거부할 수 없이 이끌리는 사랑, 창조성의 형태로 다가온다. 이처럼 욕망은 견디기 힘든 고통 아니면 달콤한 희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성이란 결국, 이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욕망이 가져다 주는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다루려면 이러한 욕망을우리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은 저 바깥 어디선가에서 온 것이며, 저 바깥 너머에는 그 영혼의 불꽃이 우리 속에 만들어내는 갈망과 소망을 통해 우리를 그 불꽃으로 다시 끌고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불타고 있는 중이다.”라고 플라톤은 영성에 대한 개요를 말하고 있다. “주님,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의 마음은 당신 안에 쉬기까지 불안하기 그지 없습니다.”라는 성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영성은 우리 안의 불안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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