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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 7.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31 조회수344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7.29 수요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1요한4,7-16마르11,19-27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오늘 1독서 요한 1서에
‘사랑’은 20회 나오고,
‘하느님’은 18회 나옵니다.
 
새삼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입증합니다.
 
사랑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사랑을 잃으면 의욕도 떨어지고 삶도 무기력해집니다.
 
하여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은
성소의 잣대이자 성덕의 잣대라 합니다.
 
새 날로 바꾸어진 예초기로 풀을 베면서 노동의 세 조건을 생각했습니다.
 
첫째 의욕이 있어야 하고
둘째 기술이 좋아야 하고
셋째 기구가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 중 첫째 조건은 역시 의욕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기구가 좋아도
할 의욕이 없으면 성과 좋은 노동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의욕은 사랑에서 솟아납니다.
사랑이 식으면 저절로 의욕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초기에 기름을 넣으면서
사랑은 기름 같은 거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무리 기계 좋고 기술 좋아도
기름이 떨어지면 기계도 기술도 쓸모없어지듯,
사랑의 기름이 떨어지면 삶은 활력을 잃을 수뿐이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 삶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사랑에 실패한 인생이라면
그 인생 무조건 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닌 참 허망한 삶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샘, 생명의 샘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샘에 수로를 내야 마르지 않는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
성 나자로 모두 주님 사랑에 뿌리를 내린 삼 남매임을 깨닫습니다.
 
특히 아침성무일도 다음 찬미가를 통해서도
마르타의 주님 환대의 사랑이 그림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피곤한 주님께서 휴식하시려, 때때로 당신 집을 찾으셨으니,
  당신의 고운 말과 열심한 시중, 주님은 기뻐하며 갚아 주셨네.‘

피곤할 때 마다 편한 마음으로 찾았던 마르타 가족,
주님과의 돈독한 사랑의 관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랑이 내 삶의 중심이 될 때
우리의 이기적 불순한 사랑은
부단히 주님 사랑에 의해 정화되고 성화되며
어떤 불행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 주님의 사랑의 샘에 수로를 낼 때
우리의 사랑은 마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깨달아야 할 것이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사도의 말씀입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우리의 사랑 깊이의 중심 안에
늘 사랑의 샘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
사랑할 때 바로 하느님 체험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탓, 사랑 탓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요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는 하느님의 사랑이기에,
우리가 이를 체험하기만 하면 사랑 부자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이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충전시켜 주십니다.
 
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한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도 생각납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한 모든 이들의 자발적 응답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봉헌의 삶입니다.
 
세상에서의 보이는 사랑에 좌절했을 때
즉시 찾아야 할 분이 사랑의 샘, 생명의 샘이신 주님이십니다.
 
보이는 사랑의 끈이 끊어졌을 때
즉시 잡아야 할 끈이, 아니 언제나 잡고 있어야 할 끈이
하느님 사랑의 끈입니다.
 
오라버니 육친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마르타 는
즉시 주님 사랑의 끈을 잡고 일어섭니다.
 
주님은 당신 생명의 말씀으로 마르타를 일으켜주시며
마르타의 고백을 받아 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향한 믿음의 고백이, 사랑의 고백이, 희망의 고백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하는 힘입니다.
 
그 무엇도 주님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워선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마르타처럼 진심을 담아
주님께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고백할수록 주님과의 관계도 깊어져,
뿌리 깊은 나무처럼 늘 푸르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고백하는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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