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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도시의 해방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1 조회수414 추천수5 반대(0) 신고

 

 

 

레위 25,1.8-17

 

 

아침에 딸을 출근시켜주기 위해 나갔는데,

매일 아침 다니던 그 거리가 아니다.

갑자기 멍한 느낌이 들었다.

꿈인가?

 

암만 휴가철이라해도 그렇지, 거리가 텅 비었다.

모두들 떠나버렸나?

어제 저녁 퇴근길을 막았던 차들은 그럼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차량이었나보다.

 

조금 달리다보니, 아침까지 떠나지 못한 차량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고속도로 출구가 가까워 지면서는 어느새 3차선 도로가 꽉꽉 막혔다.

차를 갓길로 빼서 동탄 면사무소 뒤로 난 한적한 시골 길로 돌아갔다.

 

 

 

딸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차선은 다시 한갓지다.

한쪽편 차선은 아직도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산IC에서 동탄시내까지 느릿느릿 기어가는데,

한쪽편 차선은 텅텅 비어서 춤을 추며 지그재그로 달려도 상관이 없다. ^^

 

그래, 모두들 떠나라! 

단 며칠만이라도 이 넓은 거리에서 숨좀 제대로 쉬며 살아보자.

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던 해, 수원으로 시집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처럼.

북문, 종로, 남문 사이로 난 국도를 제외하면, 차들이 한산하게 지나다니던 그 때처럼.

 

그 시절, 드물게 있었던 자가용, 파란색 포니를 타고,

향남면에 있는 시아주버니의 목장으로 가는 길은 

수원의 맨 끄트머리인 고색과 오목동까지의 포장도로가 끝나고,

터덜터덜 와우리를 들어서면서부터 끄덕끄덕 졸다가 눈을 뜨면, 봉담,

또 한참을 졸다보면 발안, 그렇게 한시간 반? 쯤을 먼지를 일으키며 가야

향남면 목장이 보였었지.

 

 

그 넓다란 목장도 이젠 남의 것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도 옛모습은 거의 없다.

길은 포장되고 네 배로 넓어졌지만, 그보다 몇 배의 사람들이 더 빠른 속도로

길바닥으로 나와 다니는 형국이다.

 

길에서 끄덕끄덕 졸던 시간은 줄어들었는데,

터덜터덜 느리게 가던 시간만큼 남아돌아야 할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만큼 여유로와야 할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더 초조하고, 더 급하고, 더 바빠진 우리들의 삶이다.

 

이제와서 모든 것을 다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휴가철, 단 며칠 만이라도 복닥거리던 도시가 텅 비워져

그 옛날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 옛날로 돌아가 미래를 다시 꿈꾸어보는 시간이 되어도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내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이리라.

 

 

 

그래서 정신없이 달리던 일을 멈추고

가끔씩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방향을 잡으라고

7년마다 안식년을 두어 가던 길을 되돌아보게 하였나보다.

 

7년마다 안식년을 가지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7년이 일곱번 겹치는 해에는

완전히 모든 삶을 원상복귀하여 셈을 다시 해보라고 하였나보다.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49년전으로 홀랑 되짚어 올라가서

그때의 조건과 그때의 상황을 다시 되돌려 받는다면 ?

그때의 부귀와 그때의 영화를 돌려받을 수 있다면?

이런 상상만으로도 신나고 재미있다. ㅎㅎ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런 불로소득은 정당치 않은 것 같다.

유일회적인 삶의 엄중함으로보아도 공평하지 않을 것 같다.

50년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반역일 것 같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삶이 50년전으로 되돌려진다면,

우리의 모든 실수와 어리석음을 만회하고,

더 큰 충일로 삶을 완성할 기회를 부여받을것 같긴 하다.

 

하지만 한번 지나온 삶은 역시나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는지라

'희년'이라는 그 좋은 이상은 사실, 역사 안에서 실현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시기를.

현실적으로 가능성 없는  희년을 50년동안이나 목빼고 기다리지 말고,

바로 "오늘, 이자리"에서 희년을 살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래.

오늘이다.

이자리다.

 

 

휴가철에 모두가 떠난 텅빈 도심의 한 복판에서

30여년전의 과거를 선물받았고

또한 오늘을 선물 받았다.

 

옛 소유지는 영영 되돌려 받을 수 없겠지만,

나 오늘, 이 자리에서 희년을 살 수는 있다.

 

자유와 해방의 기분을 만끽하며

기쁘게 이 뜨거운 여름을 즐길 수는 있다.

 

 

그래!

걱정말고 다 떠나라!

이 도시는 내가 지켜주마! ^^

 야호!

 

 

 (아래사진: 연합뉴스-오늘 강원도 가는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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