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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땅에서 하늘을 사는 우리들" - 8.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3 조회수402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8.2 연중 제18주일
                                    
탈출16,2-4.12-15 에페4,17.20-24 요한6,24-35

                                                  
 
 
 
"땅에서 하늘을 사는 우리들"
 
 


땅에서 하늘을 살라고 부르심 받은 우리들입니다.

오래 전 샛노란 민들레 꽃 가득 한
수도원 뜰을 보며 써 놓은 애송시가 생각됩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뒤뜰 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

어떻게 땅에서도
하늘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는지요?

이 열쇠는 몸에 달렸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 과제가 몸입니다.
 
몸은 구원의 문이 되기도 하고
구원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민감한 몸인지요.
 
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강론 쓰는 저 역시 갈등하다
이열치열이란 말을 생각하며 선풍기를 끄고 합니다.
 
더위와 추위에,
배고픔과 목마름에 민감히 반응하는 몸입니다.
 
때로는 마치 몸이 나인 듯,
몸이 전부인 듯 생각되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몸에 관계된 직업들, 놀이터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와 절, 서점을 다 합해도
음식점 수는 못 당할 것입니다.
 
이래서 수도승생활(monasticism)은
금욕생활(asceticism)이라 할 정도로
몸의 훈련과 절제에 온 힘을 쏟음으로
영혼이 주인이 되는 삶을 의도했습니다.
 
몸의 종이 아닌 몸의 주인이 되어 살 때
비로소 땅에서 하늘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습니다.
 
땅에서 하늘을 살았던,
또 우리에게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주신 분이
바로 모세와 예수님이셨습니다.
 
두 분 다 몸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탈출34,8ㄱ)

주님과 함께함으로,
주님의 은총으로 몸의 욕망을 극복한
모세임을 상징하는 구절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의 모습,
한 구절입니다.

‘그분께서는
  사십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마태4,2).

광야 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
예나 이제나 똑같은 몸의 현실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탈출기의 광야여정 중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
그대로 우리의 모습 같습니다.
 
그대로 몸의 욕구와 관계된 현실입니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땅에서 하늘을 살기가,
사람이 되기가,
몸의 극복이 이토록 힘들다는 것입니다.
 
몸의 욕구 충족 따라 대부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경제를 살려준다 하여,
잘 살게 해준다 하여 뽑은 대통령이 아닙니까?
 
탈출기의 사람들이나 예수님께 모여든 사람들 다 똑같습니다.
 
아니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진보는 이토록 힘든 겁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땅과 몸과 빵의 경제 문제가 전부가 되어
하늘을 가릴 때
영혼을 가릴 때
사람은 그대로 약육강식의 동물로 변하고
세상 광야는 정글이 되어 버립니다.
 
바로 오늘날의 현실이 아닙니까?
 
땅에서 하늘을,
몸의 현실에서 영혼의 이상을 살아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목적이요 보람입니다.
 
광야 여정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 하늘 양식으로 살아갔듯이
우리도 하늘 양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리라.”

하느님을 알아야,
하늘 양식을 먹어야
비로소 땅에서 하늘을 사는 사람이요,
절제되는 몸의 욕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의 광야여정 중
땅에서 하늘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번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바로 이게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땅에서 하늘을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바,
바로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썩어 없어질 것들에,
양식에 시간과 정력을 탕진하는지요.
 
본질적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에
너무 많은 것을 낭비하는 오늘 날 세상입니다.
어제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1면의 두 사진이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빛과 어둠 을,
표면과 이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경향신문의 사진은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농성 중인 노조원들에게
생수를 전달하기 위해 공장 진입을 시도하자
회사 측 사원들과 비노조원들이 접근해 막는
아수라장의 어두운 현실의 모습이었고,
 
서울신문의 사진은 개장을 앞둔
광화문 플라워 카펫의 화려하고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빛 이면의 어둠을 봐야 합니다.
 
우선 본질적이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 것은
인간을 현혹시키는 화려하고 밝은
외적 단장이나 치장이 아니라
부조리한 어둔 현실을 서서히 개선해나가는
진정한 노력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을 도외시한 외적 성취들
결국은 모래위에 집짓기라
언젠가는 허망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진정 영원한 양식을 주는 하느님을 찾는 이들,
피상적인 것 넘어 본질을, 부조리한 어둔 현실을 직시합니다.


주님의 두 번째 말씀 역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분명 제자들이 기대한 답은 아마 이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물은 사람들
아마 나름대로
이런 저런 눈에 보이는 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하느님의 일은
이런 눈으로 확인되는 업적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하느님 없이 행하는 모든 일들,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향기 없는 꽃과 같고 영혼 없는 몸과 같습니다.

아드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일입니다.
 
믿는 이들 존재 자체가 하느님의 일입니다.
 
크든 작은 일이든
그분께서 보내신 분을 믿는 믿음으로 일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일이 되어
그 일도 성화되고 비로소 의미가 주어집니다.
 
활동주의에 빠져
하느님을, 자기를 잃고 일하는 이들
참으로 어리석은 이들이요 아주 위험천만입니다.
 
진정 믿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아무 일 안 해도
존재 자체로서 하느님의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일의 관상적 차원에 주목해야 합니다.
 
존재 자체로서
공동체에 큰 산이, 큰 나무의 그늘이 되어주는 이들은
그대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세 번째 말씀 역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의 백미입니다.
 
하늘에서 우리에게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줍니다.
 
하느님의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빵인 주님을,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먹어야
비로소 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생명의 빵이 아니곤
결코 몸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주님의 생명의 빵이
우리 마음뿐 아니라 몸의 욕망도 정화하고 성화합니다.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생명의 빵인 말씀과 성체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땅에서 하늘을 살라고,
하늘의 별처럼 살라고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입니다.
 
모세를 통해 광야여정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만나를 주신 하느님은
주님을 통해 참 좋은 만나인 말씀과 성체를 주십니다.
 
그러니 욕망으로 멸망해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합니다.
 
매일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새 인간의 옷을 입혀 주셔서
땅에서 하늘을 살게 하시는 참 좋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늘에서 빵을 주셨으니,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지혜16,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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