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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명 루비 귀고리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06 조회수447 추천수5 반대(0) 신고
변모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비와 같이 예수님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발생한다. 몰라볼 정도로 모습이 바뀌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매일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 계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너무나 바뀌신 모습을 보고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에게 빛을 비추시어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이를 드러내 보이셨다.
이러한 일이 예수님에게만 일어날까?
한 소녀에게 성인(聖人)이란 어떤 사람이냐고 질문하자 그 소녀는 교회의 스테인드 글래스(stained glass) 창문을 가르키면서 “투명 인간”이라고 답했다. 아마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우리 모두 너무나 우매하여 소녀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스테인드 글래스의 창문들은 “우리의 더러운 몸”이다.
 
수피즘(Sufism)은 이슬람교도의 일부가 신봉하는 일종의 신비주의 신념 또는 사상이다. 수피즘의 특징은 일종의 도취 상태에서 지상(至上)의 경지를 느끼는 것으로, 타와클[信賴], 마리파[恩寵], 파나[忘我]와 같은 특유의 용어가 그런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 사상은 특히 시(詩) 형식으로 많이 전해져 내려 오고 있는데, 알아라비, 이븐, 파리도 등은 아랍어로, 루미, 하피즈, 자미 등은 페르시아어로, 네시미, 니자지 등은 터키어로 시(詩)로써 표현하였다.
 
루미(Jelaluddin Rumi, 1207-1273)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서 가족과 함께 터키로 갔다. 거기서 주술사 타브리즈(Sams Tabriz)를 만나 개종을 하게 되고 많은 시련을 겪지만 타브리즈를 만나고 나서는 신비스러운 환각상태에 빠지게 되고 많은 유명한 시를 쓰게 되었다. 렘브란트를 빛의 화가라고 한다면 루미는 빛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여명루비귀고리(The sunrise ruby)>가 특히 유명한데 한 소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정답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른 아침 시간,
동이 트기 바로 직전에
사랑하는 연인들이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신다.
소녀가 물었다.
당신은 나를 더 사랑합니까 당신 자신을 더 사랑합니까?
진심을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소년이 말했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저는 햇빛에 비춰지는 루비와 같습니다.
그것을 빨갛게 물든 세상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아니면 돌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루비는 햇빛이 지나가는 것을 결코 막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알라가 ‘나는 신이다.’하고 말하며 진리를 말했던 것입니다.
루비와 여명(黎明)은 하나입니다.
용기를 갖고 정진(精進)하십시오.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들으십시오.
그리고 이 여명-루비를 귀고리로 하십시오.
계속하여 당신의 우물을 파십시오.
게을리할 생각일랑 아예 마십시오.
물은 거기에 분명히 있습니다.
매일 우물을 파십시오.
당신의 헌신적인 행동은 문에 달린 고리와 같습니다.
계속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그 안에 있는 기쁨이 드디어
창문을 열고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루비라는 돌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빨갛게 물든 세상만 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변모(變貌)의 의미이다. 우리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또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또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몰입하여 자신을 잃어버려도 자기 자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초월하여 어떤 것을 보게 된다. 우리 모두 말을 하고 돈을 세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만은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인들은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한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타울러(Johann Tauler, 1300-1361)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신성한 심연의 불꽃을 이용하시어 우리들의 영혼을 불태우신다.
이 초자연적인 힘으로 우리들의 영혼을 계도하시고 정화시키신 다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독특하고 청정한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만든다. 이렇게 완전히 달라진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하는 것은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느끼기도 어렵다. 즉 무척 경이로운 일이며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상태에서 빛을 받아 정화된 우리들의 영혼은 신성한 칠흑 같은 어둠으로, 태고의 고요 속으로 빠져들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된 것을 모른다. 하느님께로 빨려 들어 가 이제는 모든 것이 대등하게 되며 대등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심연(深淵)에서 우리들의 영혼은 길을 잃고 하느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게 되거나 심지어는 자신도 모르게 되며, 하느님과 닮은 것과 닮지 않은 것도 모르거나,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버려 모든 분별심(分別心)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스도 인이면 당연히 이런 경지를 경험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믿음이 약해서 이런 경지를 맛보는 그리스도 인들이 드문 것 같다. 우리 모두 작아짐으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아지게 되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 빛을 받아 하느님과 하나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는 결코 우리들이 비현실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울러와 그 시대 사람들은 정말로 열심히 믿어 많은 사람들이 “빨갛게 물든 세상”을 보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가 한 말은 시간을 초월하여 수 세기 동안 살아 움직이고 있다.
타울러가 우리의 살아있는 믿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울러와 그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하느님의 가슴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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