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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관상기도 - 하느님과의 친교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0 조회수603 추천수1 반대(0) 신고

 

  관상기도 - 하느님과의 친교 

 내가 스위스에서 사는 동안 기도 모임에 가입해 있었는데,

그 모임엔 정원사인 친구 한명이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집에 오는 길에 가끔은 저녁기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아주 귀중한 보물을 선사 받은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관상기도였다.
관상기도는 그 사람 안에서 솟아나는 샘과 같은

것으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적인 하느님과의 일치인 이
물 흐름을 ‘내 안의 기도’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단지 극소수의 축복 받은 사람에게만 보장되는 예외적인 상황인가?

이 관상 기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도교 대가들의 일치된 증언대로 실제로 참된 기도이고,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것으로,

여기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요한 4,23-24).
관상기도는 영적으로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세례 받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하느님과의 모든 내적 친교이며,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 모두를 이 친교로 이끄시길 원하셨다.
그 이유는 관상기도가 성부와의 독특한 친교이기 때문이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관상기도를 우리가 사랑 받고 있음을 알고
있는 하느님과 단둘이서 맺는 우정관계로 이해하였다.

우리는 결코 관상기도를 우리의 마음을 아는 것,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

 적어도 우리의 마음을 알리는 갈망으로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친교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고 있고,

이 친교를 찾아 나서야 하고,

투쟁해야 하고 청해야 하며 그리고 선물로 주어져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우정에도 다른 모든 것을 뒷전으로 해야 하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도록 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즉 “저는 그분을 보고 그분께서는 저를 보고 계십니다.”라고 감실 앞에서

기도하던 한 농부가 아르스의 본당신부 비안네 신부에게 말하였다.

침묵 속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거나

하느님 앞에서 사랑의 시간이 없다면,

관상기도는 마치 눈 뜬 채 잠을 자는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성부께 대한 예수의 기도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 대화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기도 안으로 받아들이시길 원하신다.

이것은 특별한 능숙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의 순진함을 요구한다.
우리도 평범하고 순박하며 겸손하여

깊이 하느님과 친밀한 기도생활
을 하여야만 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고,

우리와 당신의 고난의 시간
에 그분과 함께 머물러 있다면,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하느님과의

친밀한 기도를 선물하실 수 있다.

관상기도는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시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듯이

선교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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