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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 바오로가 느꼈던 감옥의 체험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1 조회수432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도 바오로가 느꼈던 감옥의 체험 - 윤경재

 

사도 바오로는 전도 여행 중에 여러 차례 감옥에 갇혀 지냈다. 사도행전 16,16절 이하를 따르면 처음 감옥에 갇힌 것은 필리피에서였다. 귀신들려 점치는 여인을 구마했다는 이유로 그의 주인 일당에게 잡혀 관리들에게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 후에도 바오로 일행은 유대인들의 고발로 짧은 감옥 생활을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당하였다고 여겨진다. 에페소에서는 데메트리오스라는 은장이의 고발로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이때 필리피서와 필레몬서, 코린토서 등을 썼을 것으로 본다. 그 뒤에도 카이사리아에서 그리고 말년에는 로마에서 수인 생활을 하였다.

 처음에 바오로는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려는 자신에게 왜 이런 불상사가 자주 일어나는지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이해시키고 전해줄 복음 내용은 급하고, 선포할 지역도 넓어 찾아갈 곳도 많은데 이렇게 손발이 묶여 있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바오로 일행이 필리피 감옥에서 겪은 체험은 나중에 그의 생활에서 정신적 지침이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매질을 당하고 가장 깊은 감옥에 갇혔지만,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깊은 밤에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간수는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사도16,25-34)

이 체험은 바오로에게 하느님의 능력을 알고 자신이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강한 소명의식을 심어 주었다. 특히 하느님께서 감옥 문을 열어 주셨지만, 금세 탈옥하지 않고 기다림으로써 기대하지 못 한 성과를 냈다는 점이 더욱 큰 체험이 되었다. 자살하려는 간수를 살리고자 측은지심을 내고, 한순간 참아낸 그의 인내가 더 훌륭한 결과를 일으킨 것이다. 특히 16,35절에서 바오로 일행이 공식적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미리 탈옥했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터졌을 것이다. 이 체험 이후로 바오로는 감옥 생활을 큰 고달픔으로 여기지 않은 듯하다. 조급하게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형제 여러분, 나에게 닥친 일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필리1,12) 

바오로가 보낸 필리피서 내용을 보면 그가 감옥에 갇힌 것에 관하여 깊은 묵상을 하였고 어떤 깨달음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온 경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형제들이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더욱 대담하게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깨달았다. 

또 하나 바오로는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이 어떤 이에게는 나쁜 길로 빠지는 기회가 되었다고 알았지만,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이 있는 자들에게도 아량을 베푸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모두 인간의 눈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필리피1,18) 

그리고 그는 죽음을 넘어서는 초월의 경지를 체험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필리피1,20-24)

이 대목은 자신의 관점이 아니라 타인의 이해와 나아가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본 사람만이 나올 수 있는 고백이다. 바오로는 육신의 영어 생활을 통해 육신은 풀려 있으나 정신이 옭매어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자신은 육과 정신을 가두는 감옥을 넘어서 영의 자유를 만끽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흔히 인간들은 자신이 육신의 감옥뿐만 아니라 정신의 감옥에 갇혀 사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평생을 보낸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은 자유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틀에 갇혀 지낸다. 편견과 집착이 외부 자극에 방어하려는 경계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가두고 회피하며 외골수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생각과 사고에 반응하는 태도가 모여 어떤 일정한 틀을 이루는데 우리는 그것을 性格이라 부르면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러면서 그 성격을 도저히 바꿀 수 없고 확정적인 것으로 여겨 自我라고 부른다. 

인간이 스스로 말하는 自我는 하느님께서 창조 때 “보시니 좋더라.”라고 부여하신 ‘하느님의 모상’을 잃어버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하느님의 모상을 자기 본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사도 바오로는 이 자아의 틀을 깨는 체험을 감옥 생활을 통해서 이룬 것이다. 자아의 틀을 깨어버림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로마8,29) “하느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8,14) 

바오로에게 육신의 고통은 인간 정신의 얽매임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그리고는 육신의 고통과 정신의 참 자유를 얻으려면 영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온전하게 확신한 것이다. 거짓 선교사들이 저지르는 만행과 그릇된 가르침을 성령의 결핍과 정신의 얽매임으로 보게 되어 예수그리스도와 하느님을 올바르게 아는 지혜를 얻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쓰레기라고 치부하였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피3,7-9)

자아보다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채우려는 사람은 자신을 비워야 하는 것을 예수를 통하여 배우자고 외쳤다. 그래서 그는 초기 공동체가 전해 준 예수 ‘공허가(空虛歌)’를 필리피서 2,6-11절에 남겼다. 바오로는 그 비움 속에다 하느님께서 무엇인가를 새로 채워 주신다고 설파하였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코린토 전서3,16)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이런 결론은 모두 바오로가 겪은 고통과 감옥 생활을 통해서 얻은 선물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16,24) 이처럼 바오로는 자신의 십자가를 거절하지 않고 올바로 짊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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