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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20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2 조회수477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16-17절 말씀은 후대에 삽입하였다는 생각이 먼저 떠 오르므로 이에 대한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다시 묵상하려고 합니다.   

내일 복음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가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 용서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 21-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단둘이 만나 타일러고 그래도 안 되면 증인이 될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이를 확정하여 교회에 알리고 교회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하였으므로 교회의 말까지 합쳐서 고작 세 번의 용서에 불과합니다.
 
이방인과 세리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나 오늘 이 말씀은 구약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또 예수님 당시에는 교회가 없었으나 교회에 알려라 는 말씀은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으므로 이 말씀은 초기 공동체가 형성된 이후에나 가능한 말씀이므로 후대 삽입으로 또는 복음서 기자의 생각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였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기억에는 복음서에 ‘교회’는 타 복음서에는 전혀 언급된 적이 없으며 마태오 복음서에만 두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 곳은 오늘 복음이고 다른 한 곳은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마태 16,18)하신 말씀으로 우리 교회의 설립 근거가 되는 아주 소중한 말씀이지만 오늘 복음을 후대삽입으로 또는 기자의 생각을 기록한 것으로 묵상하면 이 말씀마저도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긍정적으로 묵상하면 죄의 용서에 대한 횟수가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방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설득하다가 안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교회의 도움을 받아서 끝까지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불쌍히 생각하여 오히려 더 자비를 배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묵상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는 앞에서 언급한 '교회'의 의미이고 두번 째는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 하신 이 말씀은 죄인으로 확정하여 불이익을 주려는 뜻이 다분히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죄인에게 자비를 배풀기 위해서 세 증인까지 동원하여 죄인으로 확정지을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이 세리나 창녀 등 죄인을 사랑하신 것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하늘 나라에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씀이며, 이 땅이나 저 하늘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씀이어서 결론은 이 땅이 바로 하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있다하더라도 이 세계에서 善業을 쌓으면 저 세계에서는 善果를 얻을 것이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선업만을 쌓으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어떤 보상을 바라고 선업을 쌓는 것은 이천년 전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논리이고 지금은 善이기에 행하여야 하는 사람의 도리에 호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보시는 늘 무주상 보시를 해야 하며 어떤 대가를 바라고 보시를 하는 것은 오히려 헛된 기대심리만 심어줄 뿐이며 이런 기대심리가 무너지면 오히려 더 각박해 질 수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하신 이 말씀은 지금 두 사람이 불화하여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으므로 서로 화합하여 합심하면 두 사람의 갈등은 모두가 해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풀어주는 말씀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인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하였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하나로 합심하면 더 이상 갈등이나 불화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참(眞)으로 하나가 된 상태이므로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즉, 참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늘 둘이 충돌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부간에, 부자지간에, 고부간에 충돌이 있고, 노동현장에서는 노사간에 충돌이 있고, 사회에는 계층간에 충돌이 있고, 정치는 여야간에 충돌이 있고, 이 땅의 통일문제는 남북간에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공통점은 바로 간(間)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런 사이(間)를 없애라는 뜻이며 이런 사이가 없는 상태가 바로 하나 된 상태이며 이처럼 하나 된 상태가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사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야 합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도 양보이고 죄를 회개하는 것도 죄지은 사람 입장에서는 양보입니다. 이런 양보를 통하여 하나가 되어야 함에도 서로가 자기주장만 일삼으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문제 해결은 되지 않고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는 이상이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신앙이 필요한 것이며 이를 의심한다면 그리스도 교인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이렇게 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바로 복음을 이 세상 끝까지 전해야 하는 이유이며 교회의 숫자를 늘리고 신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가르침을 따르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라 하셨으며 종교적 믿음을 말씀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굳건한 믿음인 신앙은 없고 오직 종교적 믿음만 있는 오늘의 현실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이 땅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예수님의 이름인 참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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