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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란치스코신부] 용서의 샘, 용서의 강(2009.8.13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작성자전명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3 조회수602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꼬 신부의 강론
2009.8.13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여호3,7-10ㄱㄷ.11-13-17 마태18,21-19,1

<용서의 샘, 용서의 강>

    산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닮아야 용서의 샘, 용서의 강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햇풀과 같이 덧없이 지나가고, 하느님은 영원히 계시도다.”

    햇풀과 같이 덧없이 지나가는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영원하신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께는 매일이 새 하늘, 새 땅입니다. 매일 끊임없이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시오 이런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역시 매일이 새 하늘, 새 땅입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새롭게 열리는 새 아침, 새 하늘, 새 땅입니다.

    끊임없이, 영원토록 책임을 다하시는 부지런한 하느님이십니다. 어제 까지 1독서의 주인공 모세는 퇴장하고 새롭게 주인공으로 등장한 여호수아입니다. 모세의 역할이 끝나자 여호수아를 그 후계자로 하여 당신의 구원 역사를 펼쳐 가시는 영원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사람은 바뀌어도 하느님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진로를 막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은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요르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이릅니다.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 복판 마른 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서, 마침내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이다.’

    오늘 1독서의 주님의 계약 궤는 그대로 주님의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주님의 계약 궤 대신, 주님의 미사은총으로 매일 하루의 요르단 강을 무사히 건너는 우리들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매일 주님의 은총으로 요르단 강을 건너 마침내 약속의 땅 하늘나라에 이를 것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들 역시 지칠 줄 모르는 용서와 자비, 인내의 사람들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께서 베드로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이 말씀,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용서의 샘 되어, 끊임없이 흐르는 용서의 강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영육의 건강에 자유로움입니다.

    “이 악한 종아,…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만 탈렌트 빚을 탕감 받고도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냉혹했던 이 악한 종,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만 탈렌트 탕감 받는 은총을, 자비를, 용서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불쌍한 동료에게 인색하고 무자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깨닫고 보면 우리 모두 하느님께 만 탈렌트 탕감 받고 은총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각에서 저절로 샘솟는 찬미와 감사와 기쁨이자 치유의 구원이요, 주님처럼 우리 역시 자비의 샘, 용서의 샘 되어 살 수 있습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이웃을 용서해야 아버지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이미 끊임없이 무한한 용서와 자비를 받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끊임없이 인내하며 이웃을 용서하고 자비를 행할 수 있습니다.

    매일 하느님의
    은총의 샘,
    자비의 샘,
    용서의 샘인 이 거룩한 성체성사 덕분으로 하루의 요르단 강을 잘 건널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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