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용서는 기적입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3 조회수595 추천수6 반대(0) 신고
 
 

용서는 기적입니다. - 윤경재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18,21-22)

 

얼마 전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 특강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공지영 작가를 초대하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책은 사형수를 소재로 한 소설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으며 영화로도 상영되어 큰 반향을 남겼습니다. 

전 세계에 살인범으로 감옥에 갇힌 사형수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거의 30대 남성이랍니다. 나이 먹은 사람은 주로 과실치사로 죄를 지었으며, 고의적 살인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들이 지내온 환경을 살펴보면 어릴 적에 어머니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도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매 맞으며 자랐습니다. 도망친 엄마를 어렵사리 찾았지만, 의붓아버지 탓에 또 다시 버림받게 됩니다.

작가가 예를 드는 사형수들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당 안에 가득 찬 청중들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이 그런 환경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살 수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생은 하나같이 지지리 복도 없었습니다. 공지영 작가는 그들을 한마디로 죽으려 해도 죽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저주받은 인생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고도 근시인 한 죄수는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다가 교도소에 들어와 처음으로 안경을 얻어 쓰고서는 마음껏 신문과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답니다. 교도소에 들어와 처음으로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답니다. 그런 사람을 등쳐먹고, 애써 일한 봉급마저 주지 않으려 갖은 술책을 쓰는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화가 치솟았습니다. 어려서 겪은 고통 때문에 사형수들이 느꼈을 분노가 어느 정도 컸을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어느 사형수와 면담 도중에 자기 손을 만지작거리는 죄수를 만났는데, 예전 같았으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위협을 느껴 손을 잡아 뺄 법도 한데 그때 속으로 ‘얼마나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으면 내 손을 이렇게 어루만지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놔두었다고 말합니다. 타인을 이해하려 드니 여유가 생기더랍니다.

그들이 받은 어릴 적 체험은 한마디로 학대였다고 말합니다. 구타 같은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감정적 학대, 성적 학대 특히 방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심각하다고 합니다. 배고프다고 울 때 밥 안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할 때 갈아주지 않고, 안아주어야 할 때 신체적 접촉을 전혀 해주지 않는 것이 오래도록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외면하고 싸늘하게 대한 것이 마음속 깊이 상처로 남아 성인이 되어서 작은 계기에 폭발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힘이 없었다고 생각했을 때 억눌렀던 감정이 성인이 되어 한꺼번에 분출한다는 것입니다.

공지영 작가는 사형수들이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변화하는 것을 바라보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한 사람의 영혼을 구제하려고 애쓰시는지 새삼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는 어려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와 대학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젊은 날 뭇 사람들에게 치어 상처를 자주 받았고, 다시는 사람들을 믿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꽁꽁 닫고서 아무도 용서할 줄 몰랐으며 용서받을 일도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살아오면서 무슨 일에나 열심히 하였고 자기가 의도한 대로 성공을 할 줄 알았지만, 사람 관계에서만큼은 무수한 실패와 상처를 받아 마음을 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고서 오랫동안 냉담에 빠져 다시는 하느님을 찾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계기에 사형수를 돌보는 봉사를 하게 되었고, 그 큰 죄인이 회개하여 하느님을 찾는 모습을 통해 용서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치러진 것이 김영삼 정부 때랍니다. 그 당시 회개한 한 사형수의 사연을 아시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사형 집행을 막으시려 백방으로 애쓰셨으나 그만 물거품이 되었답니다. 그때 그 사형수를 만나 지켜보면서, 하느님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시며 베푸시는 용서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자신도 교회의 품에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여지없이 무너졌을 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죄가 깊고 잔악하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구원하셨다고 작가는 스스럼없이 고백합니다. 공지영 작가는 자신이 교회에 돌아오게 된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아니 용서의 기적이라고 결론지어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용서의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용서야말로 기적이라고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용서는 내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시는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