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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6 조회수897 추천수8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20 주일 -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옆에 개신교 신학교를 둔 서울 어느 한 본당 신부님의 하소연입니다.

개신교 신학생들이 몰래 미사에 참석하여 성체를 (그들 말대로) 먹어 본다든가, 쪼개 보다든가 아니면 가다가 길에 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성당이기에 일일이 신원조회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아예 성당 입구에 “개신교 신학생 출입금지”라고 써놓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신학교의 목사 교수님에게 전화가 와서 왜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냐며 한 소리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성체에 대해 설명하려 해도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살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에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이정도이니 오늘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유다인들이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하며 모두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의 신비를 거행하고 나서,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성을 넘어섭니다.

 

마더 데레사가 한국에 왔을 때입니다. 그 분이 연세가 꽤 있고 몸이 약해진 상태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해 위로해주기 위해서 쉴 틈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한 기자가 그렇게 쉬지도 않으시는데도 피곤하시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침에 영한 성체의 힘으로 살아요. 내가 힘을 빼고 그 분의 힘으로 사는데 내가 힘들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과연 기자는 마더 데레사의 대답을 이해했을까요?

 

우리 모두는 살아갈 힘을 어디에선가 얻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나 쾌락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인생에서의 성공을 향한 강한 집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고상하고 가치 있는 것은 사랑에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너 때문에 산다.”라는 말을 하듯이, 남편이 스트레스 받는 직장에 오늘도 출근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고 아내도 가정에서의 어려운 일들을 해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랑이 줄어들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힘들어 질 것은 뻔한 일입니다. 사랑이 없어지면서 결국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게 되는데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결국 우울증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있다고 하여 과연 우리 삶에 충분한 에너지를 줄 수 있을까요?

한번은 이런 을 꾸었습니다. 좋아했던 여자와 결혼을 하여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밥상 차려주다 말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짜증을 냅니다. 저는 그 여자의 의외의 성격에 놀라고 실망합니다. 저는 결혼을 후회하게 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하며 고민하다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고 사제라는 사실에 큰 안도의 한숨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에는 그렇게도 원했던 삶이었지만 막상 꿈을 꾸어보니 그만한 악몽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을 삶의 의미로 생각하고 사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사랑이 그렇게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버스가 낭떠러지로 굴러서 모두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며칠 뒤 뉴스에 그 사고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같은 장소에서 남편도 떨어져 자살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아내가 삶의 전부였고 아내가 없이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한 그 사람은 지옥에 갔을 확률이 큽니다. 자신을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죽었다고 자신의 영혼까지 포기해야 할 필요가 없고 아내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삶의 의미로 사랑한다면 그 세상 것이 사라지면 삶의 의미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삼손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잉태될 때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물론 부모님도 술과 방탕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었고 머리도 깎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삼손이 그렇게 하느님께 바쳐져서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 때는 수천수만 명의 불레셋 병사들이 몰려왔어도 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영광이었고 하느님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삶의 의미를 두지 않고 이스라엘의 적인 불레셋의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데릴라라고 하는 한 여인을 위해서 살게 되었고 결국에는 머리카락까지 깎여버리게 되고 눈까지 뽑히는 굴욕과 아픔을 당하면서 하느님께, 혹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수치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완전하거나 영원할 수 없습니다. 완전하시고 영원한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 삶의 의미를 두지 않고 변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그것이 흔들릴 때면 자신도 따라서 흔들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볼 성서 구절은 이것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삶의 의미였고 이유였습니다. 예수님만큼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살았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고통일지라도 세상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고통과 인간이 어쩔 수 없어 당하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 큰 고통을 겪어내시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이미 말씀드렸듯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삶의 기쁨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고통만을 원하셨지만 그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행복해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모든 희생을 마다하지 않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것으로 모든 보상을 받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하게 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삶의 에너지가 생깁니다. 예수님 혼자만을 위했다면 절대 십자가를 지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계셨고 그 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실 수 있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만큼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이유와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식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바로 세례 때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을 보고 아셨습니다. 성령님은 사랑 자체입니다. 즉 하느님의 본질이고 전부인 사랑을 운반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보내셨다는 뜻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니 완전히 사랑하신다는 뜻이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예수님도 목숨을 바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성체입니다. 당신의 전부인 살과 피를 심장에서 찢어 내시어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체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믿는 만큼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고 그 분을 위해 살게 되고 그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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