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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2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7 조회수386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6-22

그때에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인식함에 있어서 존재론적 관점을 중시하여 인식할 수도 있고 의미론적 관점을 중시하여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두 가지 관점에서 인식하여야 하지만 어느 관점을 더 중시하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전자의 관점을 중시하여 하느님을 인식하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므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구원을 중시하게 될 것이며, 후자의 관점을 더 중시하여 인식하면 하느님은 완전하신 진리이므로 진리와 사회정의 추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의미론적 관점에서, 반면에 유대교는 하느님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흠숭하였으므로 이런 관점의 차이로 예수님은 끝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묵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관점을 잘 표현한 말씀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신 말씀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신 말씀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하느님을 의미론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계셨음을 묵상하게 합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두 개의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돌 판중 하나의 돌 판에는 하느님을 흠숭하고 섬김에 대하여 즉,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계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존재론적으로 인식하면 첫 돌 판에 새겨진 계명을 중시할 것이며, 하느님을 의미론적으로 인식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기록한 돌 판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어느 부자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의 오늘 가르침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만을 말씀하셨으며 하느님을 흠숭하고 섬겨야하는 계명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존의 유대교 방식으로는 하느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다는 말씀임을 엿 볼 수 있으며 하느님을 바르게 섬기는 방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섬기는 방법이라고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다른 말씀은 노력하면 지킬 수 있지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신 말씀만은 지킬 수 없으며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우들이 그러 할 것이며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 실정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부자는 한국 천주교 유지재단입니다. 우리 천주교 유지재단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상상해 보면 그 재산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며 이를 다 팔아서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오늘 복음을 영원히 실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만 멀리하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으나 언제나 황금송아지가 문제입니다. 재물도 섬기면서 하느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멀리하라고 하시며 이미 산상 설교에서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마태 5, 19)하셨으며 이어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 5, 2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금 논쟁에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마태 22,21)하신 말씀은 재물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부당성에 대하여 지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땅이 어떻게 자기의 것입니까? 하느님이 창조하셨으므로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의 것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요? 하느님에게 돈 주고 샀습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의 참 의미는 황제의 것도 없다는 말씀이므로 재물을 내 것으로 생각한다면 하느님을 섬길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며 재물을 섬기며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것은 아무 것도 없으므로 모두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으며 하느님께 돌려드릴 방법이 없으므로 우리 주위의 불쌍한 이웃에게 돌려주는 것이 하느님께 돌려주는 방법임을 그동안 수없이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하여야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그리스도교라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허물어라 하신 말씀은 지금의 관점에서는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묵상해 본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소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 이웃이 굶주리고 있는데 내 혼자만 배 두드리며 포만감에 만족하는 그런 몰염치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 지구상에 기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천금만금 쌓아두고 배 두드리고 살아도 아무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황금송아지를 섬기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으므로 나를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고 이런 참된 제자들만이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이 땅이 하늘 나라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복음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내 자신이 바로 위선자라는 사실을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차라리 예수님의 가르침을 몰랐으면 위선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입교전보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미몽에서 깨어나는 진통으로 생각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재물과 하느님은 함께 섬기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하오나 저희는 재물도 섬기며 하느님도 섬기는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사옵니다.
이런 저희를 무지에서,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디,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와 저희를 주님의 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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