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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8 조회수878 추천수14 반대(0) 신고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 마태오 20,1-16



“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일당 40만원>


   처음에는 별것도 아니려니 생각하고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합병증세로 병세가 위중해져서 돌아가신 분이 계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단 하루 전날, 한 교우가 방문해서 대세를 드렸습니다. 병세가 워낙 급진전되었고, 또 워낙 위급했기에 아주 간단하게 대세를 드렸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교리만을 설명해드렸고, 물로 세례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대세를 드린 교우는 교육받은 대로 본당 사무실로 달려갔습니다. 이름, 세례명, 대세 장소, 시간, 대세 준 사람… 간단히 적어서 사무실에 보고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본당 연령회장님께 연락을 취하였고, 연령회장님은 주임신부님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유가족들에게 본당공동체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관대하게도 유가족들에게 본당 영안실 사용 및 본당 장례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연령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들께서는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이 장례절차 일체를 책임지셨습니다. 연도가 생겼다는 공지에 많은 신자들이 영안실을 찾아와 열심히 연도를 드렸습니다. 단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많은 신자들이 장례미사에 참석해서 기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장지까지 따라오셨습니다.


   이런 본당공동체의 모습 앞에 비신자였던 유가족들은 진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고두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삼우미사가 끝나자마자 유가족 전원이 예비자 교리 반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당황해하고 있을 때, 즉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내일처럼 달려드는 연령회원들의 봉사활동,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너무나 큰 몫을 해내고 계십니다.


   한평생 비신자로 지내다가 단 하루 전에 대세를 받고 돌아가신 분이 본당 공동체 안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분들은 은근히 심기가 상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친정아버님께서는 유아세례를 받으시고 한 평생 천주교 신자로 살아오셨는데, 70평생 단 한 번도 주일미사 궐한 적 없으며, 노년에 접어들면서는 단 하루도 매일미사를 거르신 적이 없으셨는데, 본당 내 봉사활동이란 봉사활동은 혼자 다 하셨는데…


   이런 친정아버님의 장례와 단 하루 전에 대세받고 돌아가신 분의 장례가 별반 차이가 없다니…‘이럴 수가!’ 하고 속상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포도밭 주인의 임금 지급 방법은 참으로 이해가 안가는 일이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장 8시간이나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실컷 늦잠자다가 한낮이 다되어 일어나서는 어슬렁거리다가 오후 5시부터 단 1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일당 5만원을 지급했습니다.


   단 1시간만 일한 사람들부터 일당이 지급되었는데, 놀랍게도 5만원이었습니다. 일당은 받은 일꾼들은 입이 ‘짝’ 벌어졌습니다. ‘이게 왠 떡이냐?’며 싱글벙글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아침 일찍부터 일한-은 속으로 이런 기대를 했겠지요.


   “단 1시간만 일한 사람에게 5만원을 주네. 그렇다면 나는 8시간을 일했으니, 가만있어보자 ‘오팔이 40’ 그럼 40만원이네. 야, 이거 오늘 운수대통이네!”


   그러나 정작 주인이 건네준 일당을 받아보니, 왠걸, 1시간만 일한 사람과 똑같은 액수인 5만원이었습니다.


   잔뜩 기대했다가, 기대가 물거품이 되자 일꾼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따집니다.


   “막판에 와서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일꾼들이 따지는 것이 당연해보이나, 보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들이 화낼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과 일꾼들은 처음부터 이후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분명히 정했습니다. 주인은 그들과의 계약을 정확하게 이행했기에 근로기준법에 어긋남이 조금도 없습니다. 고용주는 아무런 결격사유도 약점도 없습니다. 정의롭게 처신했습니다.


   따라서 일꾼들은 더 이상 요구할 권리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은근히 화가 나지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그리고 마침내 주인은 자신의 계획을 밝힙니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오늘 복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계산법과 인간의 계산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우신분이기에 정의롭게 우리와 맺으신 계약을 그대로 이행하십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은 자비로우신분이기에 약자와 죄인들, 실수한 사람들, 게으름뱅이들에게도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한평생 의롭게 살아온 의인들, 일찌감치 입교하여 한 평생 성실하게 신자생활을 해 오신 부지런하고 근면하신 분들, 혹시라도 은근히 속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느님의 자비는 세상 구석구석,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널리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한 평생 악인으로 살다가 세상 떠나기 단 몇 분 전에 회개한 우도에게도 천국을 허락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함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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