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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좋은 지도자" - 8.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9 조회수416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8.19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판관9,6-15 마태20,1-16

                                                        
 
 
 
 
"참 좋은 지도자"
 
 


참 좋은 지도자를 만난 공동체나 나라는 행복합니다.
참 좋은 지도자는 하느님을 닮아 착한 목자 같은 지도자입니다.
 
마침 우리는 어제 착한 목자 같았던 참 좋은 지도자,
김대중 토마스 전 대통령을 잃었습니다.
 
떠나고 보니 그 분의 자리가 얼마나 컸었던지 알 수 있습니다.

아침 성무일도 시 이사야 독서 중 다음 대목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악법을 제정하는 자들아,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만드는 자들아!
  너희가 영세민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내가 아끼는 백성을 천대하여 그 권리를 짓밟는 자들아!”
(이사10,1-2ㄱ)."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을 지칭하는 듯, 반복되는 역사 같습니다.
 
오늘 판관기 민담에 대한 주석도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제공합니다.

‘판관기 사가는 민담을 이용하여
  부당한 정치권력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즉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가 권력을 행사하려든다는 것이다.
  그런 자가 제공하는 안전은 백성의 자유를 빼앗기 위한 덫일 뿐이다.’

그대로 오늘의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 같습니다.
 
또 판관기 9,1-6절 까지 주석도 음미할 만합니다.
 
‘중앙집권적인 독재 권력이 지방자치적인 민주권력보다 낫다고
  백성을 설득시키려고 애쓴다(2절).
  지배 권력은
  자유를 돈에 팔아버리는 백성의 행위로부터 출발하여 생겨난다(4ㄱ절).
  경쟁자들을 없애고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권위를 세우는데 직접 돈이 쓰여 지고 있다.
(4ㄴ-6절)’

오늘 날도 돈에, 명예에, 권력에 자유를 팔아버리고
영혼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오늘 판관기의 가시나무는 포악한 독재자 아비멜렉을 상징합니다.
 
우리 임금이 되어달라는 청에
자신의 분수를 알아 겸손히 사양하는 나무들의 지혜로운 처사가
참 보기 좋습니다.

올리브 나무의 대답입니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이어 무화과나무의 대답입니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다음 포도나무의 대답입니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이 나무 같은 사람들,
도저히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건달 같은 독재자나 정치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음 가시나무의 대답입니다.
 
포악하고 잔인한 독재자, 아비멜렉을 상징하는 가시나무입니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버리리라.”
자업자득입니다.
 
돈에 자유를 상납한 결과
독재자 아비멜렉 왕의 노예 되어 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마치 배나무 밭 주변 곳곳을
가시 돋친 무수한 줄기와 잎들로 온갖 초목들을 덮어버린
환삼덩굴들이 독재자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환삼덩굴 같은 지도자를 만난 공동체나 나라는 너무나 큰 재앙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독재자도, 경영과 관리에 능한 CEO 같은 지도자도 아닌
오늘 복음의 포도원 주인과 같은 주님을 닮은 착한목자 같은 사람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임금을 나눠주는 순서도 특이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온 이들부터 나눠주는 게 아니라
맨 나중에서 온 이들부터 나눠줍니다.
 
이건 분명 능률과 실질, 질서를 강조하는 CEO의 태도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CEO였다면
아침 9시부터 순서에 따라 임금도 차등하여 지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의 처사는
이와 정 반대로 늦게 온 사람부터, 임금도 똑같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먼저 와 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한 자의 항의가 너무 당연해 보입니다.
 
이 자의 항의에 대한 주인의 답변에서 착한목자 주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포도원 주인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포도원 주인에 투덜거리던 자의 잘못은
하느님의 은총을,
자비를 상식의 잣대, 분배정의 잣대로 재려한 것이었습니다.
 
너그럽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코드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내 편협한 이기적 코드에 하느님을 맞추려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아마도 자비롭고 지혜로운 포도원 주인은
한 시간 일한 사람의 딱한 가정 사정을 헤아려
후한 급료를 지불했을 것입니다.

독재자의 관심이 권력에 있다면,
CEO의 관심은 돈에 있고, 착한목자의 관심은 사람에 있습니다.
 
하여 착한목자에게 분별의 잣대는 자비심임을 깨닫습니다.
 
착한목자 주님을 닮은 지도자가 정말 좋은 지도자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착한목자 주님께 우리의 코드를 맞춤으로 주님의 자비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너희는 먹고 깨달아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시편34,9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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