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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스라엘판 심청전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1 조회수395 추천수5 반대(0) 신고
 

 

 

 
 
 
말씀 : 판관 11,29-39
 
 
 

판관 입타는 암몬족과의 전투에 나가기전 하느님께 서원을 한다.

'만일 하느님께서 전투에 이기게만 해 주신다면,

제 집 문에서 제일 처음 자신을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그런데 아뿔사,

집 문앞에서 맨처음 튀어 나온 것은 그의 외동딸이었다.

입타는 서원한 대로 딸을 바쳐야 할 판인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이라 비탄에 빠진다.

그러나 이제와서 말을 바꿀 수는 없다.

하느님께 거짓 맹세를 하고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편, 아무 죄도 없는 외동딸은 아버지의 서약 때문에 죽어야 한다. 

그것도 산채로 불에 타 죽어야 하는 번제물이 될 운명인 것이다.

 

아버지 입타도 외동딸도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는데,

딸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나선다.

 

이스라엘판 심청이가 바로 입타의 딸이다.

 

청이 아버지는 눈을 뜨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자기 분수도 모르고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겠다고 덜컥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딸이 대신 지키기 위해 인당수에 빠졌던 게 아닌가.

 

 

두 옛날 이야기 모두 아버지의 실수로 외동딸이 희생되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의 내용도 비슷하다.

즉 욕심 + 성급하고 어리석은 판단 + 제 멋대로의 약속이 맺은 결과는

엉뚱하게도 자손에게 화를 미친다.

 

 

하지만 두 옛날 이야기의 결말은 사뭇 다르다.

심청이는 아버지가 얼마나 눈을 뜨고 싶어서 그런 일을 했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결과는 물론 심청이의 효에 감격한 용왕님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그 순간 아버지의 눈도 뜨게 되었다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입타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입타의 딸도 분명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딸이지만, 

딸의 효를 칭송하지도 않거니와 입타의 딸은 끝내 도움의 손길을 얻지 못한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바치려는 순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명해주신 하느님의 손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입타의 딸에게는 아무런 구원도 내려오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입타의 이야기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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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타는 다급한 나머지 어리석은 서원을 자청해서 드렸다. 

입타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자기가 믿는 신(神)에게 자진해서 서약을 하고

가장 아끼는 제물(자식일 수 있다)을 바치던 고대의 종교 관습에 젖어있던 사람이다.

 

사실 사람을 바치는 이런 제의식의 흔적은 고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위의 심청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아기를 용광로에 집어 넣어 종을 만들었다는 '에밀레 종'의 전설 이나,

나라에 큰 공사를(다리 건설 같은) 하기 전에, 아기를 바쳤다는 설화들이 그 흔적이다.

 

그밖에도 다른 민족들의 민담들에서 사람을 바치는 제사 이야기는 심심치않게 발견되곤 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도 이런 일은 자주 목격되었다.

몰록에게 바치는 제사란 바로 이런 인신제사를 말한다.


 

그런데 야훼 하느님은 인간을 바치는 제사를 단죄하였다.

하지만 예언자들의 시대까지도 이런 풍습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같은 망령된 이교풍습을 금지시키는 예언자들의 선포가 계속 되었다.
        (2열왕 16,3: 21,6; 23,10; 미가 6,7; 예레 7,30-31 등)

 

그런데 위의 말씀들과 앞뒤가 맞지않는 모순이 하나 발견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고 명하시는 대목이다.

바로 그렇기에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그 알 수 없는 대목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는 대목은 

인신제사 금지를 간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야훼께서는 결국에는 이사악을 구하고

대신 양을 제물로 마련해주시기 때문이다.

 

이로써 구약성경의 전체를 통해,

하느님은 인간을 바치는 무분별한 제사를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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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브라함과 입타의 경우로 되돌아가자.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이었고,

입타는 자기 멋대로의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이었고

입타는 자기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인간적인 고집이었다.

 

하느님께서 명하신 일은 하느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시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느님께서 굳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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