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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2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1 조회수370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한 스님이 길을 걷다가 빈 절집을 발견하고 들어갔습니다.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서 땔감을 찾았으나 땔감이 없자 법당에서 불상을 들고 나와 쪼개어 불을 피웠습니다. 노스님이 오셔서 노발대발 난리가 났습니다. "못된 놈이 감히 남의 절에 들어와서 불상을 태우다니..." 그러자 그 객승은 태연스럽게 "제가 불상을 태운 것은 스님께 부처님 사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노스님은 "야, 미친놈아, 목불에서 무슨 사리를 얻는다는 말이냐" 하며 더 난리가 났습니다.

이렇게 난리를 치자 객승은 법당에 가서 다른 목불을 가지고 나와 도끼로 쪼개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머리까지 치솟은 노스님이 도끼로 빼앗아 객승을 내려치려고 하자 객승이 하는 말 "사리도 안 나오는 목불이 무슨 부처님이라고, 목불은 목불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노스님은 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어 그 객승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사리도 없는 목불이 무슨 부처님이라고.." 저는 이 말이 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 소중한 말씀이기에 다시 옮겨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진실로 진실로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은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로 족한 계명을 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으로 나눴을까요? 우리의 생각이 완고하기 때문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불상을 부처님으로 알고 지극정성으로 공양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런 상에 집착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우리가 하느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길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예물을 바치면 그 예물이 실제로 하느님께 전달되느냐? 우리가 하느님께 예물을 봉헌하는 것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 것인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옛말은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말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면 하느님은 실제로 들어 주실까? 이에 대하여는 비단 저 혼자만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모두가 그들의 관습대로 하느님을 섬겼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를 깨우쳐 줄 다른 어떤 방법이 없었을 것으로, 오늘은 이런 관점에서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라고 말한 것은 너희들이 완고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에 대하여 이렇게 완고한 생각은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일까?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이며, 다른 어떤 것을 또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참된 가치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 참된 가치는 자유와 정의와 평등 그리고 평화입니다. 또 우리의 뭇 생명과 삶의 터전입니다. 자유와 정의, 평등과 평화 그리고 뭇 생명과 자연을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면 안 될까요? 바로 이런 가치들을 총칭하여 하느님으로 생각하면, 참을 하느님으로 생각하면 잘못된 것일까요?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로 이를 말씀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가치의 궁극이신 분을 하느님으로, 그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은 오직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방법 밖에는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무엇이라 규정해 버리면 그 무엇은 이미 그 무엇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으로, 우리의 그 어떤 언어로 규정지을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신 분입니다. 그 무엇이신 분을 우리는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바로 이를 추구하는 것이 현대 종교가 추구해 나아가야 할 영원한 과제이며, 이 과제는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으므로 영원히 미완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궁극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근대 이전은 모두 이단으로 정죄하였지만 지금은 철학으로, 과학으로 모두 독립하여 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 남은 것은 제사장 기능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자부심으로 삼는 예언자 소명마저도 이제는 각 분야의 거짓 예언자들에게 모두 양보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여 예언자 소명만큼은 잊지 말아야 했으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은 시작부터 너무 무겁게 시작하여 저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마침기도로 마무리 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오직 사랑만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 하였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하느님을 느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자유를 사랑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뭇 생명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길만이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하오나 아직은 완고한 저희들이기에
성령님의 크신 가르침으로 하느님을 바르게 사랑하도록 늘 일깨워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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