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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유하고 겸손한 삶" - 8.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2 조회수463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8.22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룻기2,1-3.8-1;4,13-17 마태23,1-12

         
                                             
 
 
"온유하고 겸손한 삶"
 
 


아침 성무일도 중 두 성경구절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즉각 느껴지는 것은
하느님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즉 온유함이었습니다.
 
이어 주님의 다음 복음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며칠 전 ‘한옥에 숨겨있는 겸손의 아름다움’이란 제하의
한옥에 대한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건물에도 온유와 겸손의 정신이 배어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상적인 몇 대목을 인용합니다.

“한옥의 놀라움은 사상의 맥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추구하던 가치가 건축 양식과 재료선택에 녹아있되
  그것이 결코 억지스럽지가 않다.”

어느 외국인 교수는 한옥에서 읽히는 겸손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지원’하는 겸손이다.”

계속된 어느 교수의 언급입니다.

“마을과 마을 안 다른 집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한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선조들은 지금처럼 마을 경관을 해치고
  ‘혼자’ 잘 살려고 하지는 않았다.”

“한옥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을 둘러싼 여러 층(layer)이 단단하게 결합됐기 때문이다.
  복제해서는 아름다움이 나올 수 없다.”

“한옥의 마당은 정원이 아니다.
  전통 한옥에서는 마당은 항상 ‘비어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사시사철 변하는 바깥세계를 담기위한 ‘여백 공간’이다.”

그대로 복음적 가치인
겸손, 온유, 섬김, 여백, 평화, 조화, 균형, 배려 등이 담겨있는
한옥의 놀라움입니다.
 
어떻게 아파트 안에서 한옥 같은 복음적 정신을 살 수 있는가가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입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허장성세, 허영, 교만, 위선과는 전혀 무관한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한옥 안에 스며있는 정신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배어있는 정신에 딱 들어맞습니다.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공동체 성원 모두가 한 분 스승을 모신 형제들이요,
한 분 아버지를 모신 자녀들이요,
한 분 그리스도 선생님을 모신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에 따라
평생 형제들로, 자녀들로, 제자들로
겸손과 온유, 평화와 조화, 섬김과 배려의
복음 적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어 생각나는 게 혁대의 양복 하의와 고무줄로 되어있는 몸베 하의입니다.
 
혁대는 고정되어 있어 하의가 때로 불편하지만
신축성이 좋은 고무줄의 봄베는 참 편안합니다.
 
‘아 공동체도 혁대를 시용한 하의 같은 공동체가 있겠고,
고무줄의 몸베 같은 신축성, 유연성 좋은 공동체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좋은 복음적 공동체는
고무줄과 같아 유연하고 신축성이 좋습니다.
 
하여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혁대 공동체 같다면,
예수님 제자들의 공동체는 고무줄 공동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겸손하고 온유할 때 고무줄 같이 유연하고 신축성이 좋습니다.
오늘 1독서의 나오미, 룻, 보아지
참 진실하고 따뜻한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겸손과 온유의 사람들을 당신 도구로 쓰시는 주님이십니다.
 
룻과 보아즈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의 손자가 다윗이요,
예수님은 바로 다윗의 자손이라 하지 않습니까?
매일 주님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유연하고 신축성 좋은,
겸손과 온유의 사람들로 만들어 줍니다.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시편128,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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