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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24일 월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3 조회수773 추천수6 반대(0) 신고
 
 

8월 24일 월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 요한 1,45-51



“와서 보시오.”


<이웃선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선교강의록>


   *오늘 복음을 주제로 선교 관련 특강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뭔가 어색하고 많이 부족하지만 참고하시라고 올려드립니다.


   강의 제목: 이웃선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요한복음 1장 45-51절을 토대로)


   목차


   1. 나타나엘에게 가두선교를 하고 있는 필립보


   2. 즉시 직면하게 되는 난관-냉담함


   3.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필립보


   4.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5. 본격적인 선교에 앞서


   6. 칭찬하는 CEO, 예수님


   7. 예수님의 노하우


   8. 더 큰 지평을 열어주시는 예수님



   1. 나타나엘에게 가두선교를 하고 있는 필립보


   요한복음 1장에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이란 한 대상자를 향해 가두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필립보는 나타나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2. 즉시 직면하게 되는 난관-냉담함


   필립보는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자신감 갖고, Feel 충만할 때, 용감히 말을 꺼냈지만, 즉시 나타나는 반응은 냉담함입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나타나엘이 이야기한데로 나자렛이란 동네는 완전히 깡촌이었습니다. 나자렛이 속해있는 갈릴래아 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 훨씬 나자렛을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갈릴래아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변방 지역입니다. 로마인들에게 반기를 들던 주동자들도 갈릴래아 출신들이 대부분 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인 이란 말은 특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별 볼 일없는 지방, 괜히 골치 아픈 반골들만 많은 지방, 변두리 하류 지방으로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필립보의 선교에 대한 나타나엘의 즉각적인 거부반응이 이랬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필립보의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그래도 일단 “와서 보시오.”였습니다.


   나타나엘이 보인 반응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반복됩니다. 이웃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첫 번째 의무이지만 어렵고도 험난한 과제입니다. 이웃선교 때 우리 역시 즉시 직면하는 것이 비신자들의 즉각적인 반대입니다.


   “천주교, 뭐 특별한 것이 있겠어?”


   “천주교 신자들, 하는 꼴 보니 안 되겠더라구!”


   “우리 옆집 사람도 천주교 신자인데, 정말 밥맛이던데...”


   3.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필립보


   그러나 이때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필립보처럼 자신의 경험을, 그 감미로웠던 하느님 체험을 자신감 갖고, 확신 갖고, 확실히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웃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필립보처럼 ‘와서 보시오’라고 외칠 수 있는 당당함입니다. 자신감입니다. 투명성입니다. 잘 정돈된 삶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정직함입니다.


   비신자들의 완강한 거부감 앞에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요.” 라고 즉시 꼬리 내리지 말 것입니다. 물러서지도 말 것입니다. 확신 갖고, 자신감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 충만한 은총 갖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앞에서 전교 대상자의 반응은 확실히 다릅니다.


   4.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46절 말미에 “와서 보시오.”라는 필립보의 확신에 찬 초대의 배경에는 참 하느님이자,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진정한 메시아, 구세주 하느님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한 필립보였기에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나타나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와서 보시오’란 초대를 통해서, 구구절절 복잡하게 설명하기보다는 하느님으로 인해 행복하게 엮어지는 내 삶에로,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공동체적 삶에로 그들을 초대해야만 합니다.


   ‘와서 보시오’라고 외치는데, 도대체 무엇을 와서 보라는 말입니까?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구세주의 얼굴입니다.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와 함께 걸어가는 제자공동체의 천상적 삶의 모습입니다.


   비신자들 가운데 “천주교, 뭐 특별한 것이 있겠어?” 하던 사람들이 교회에 와보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엄한 미사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신성한 전례에 감동을 받습니다. 현장에서 느끼게 되는 성사의 은총은 또한 대단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성사가 있는데, 성사의 중요성 가운데 두드러진 것 하나가 ‘성사의 현장성’입니다. 집에 드러누워서 TV를 통해 참석하는 미사가 효력이 있을까요? 메신저를 통한 고백성사가 유효할까요? 마음으로 하는 영성체가 유효할까요?


   어느 정도 은총은 받겠지만 유효하지 않습니다. 성사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집전자와 당사자가 현장에 있어야만 합니다. 성사가 거행되는 현장에서 느끼는 은총은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는 비신자들에게 일단 ‘와서 보시고’라고 교회로 초대해야 할 것입니다. ‘뭐 교회에 온다고 특별한 것이 있겠어?’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현장에 오면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먼저 초대하는 일입니다. 그 이후는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5. 본격적인 선교에 앞서


   요한복음 1장에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일종의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웃선교에 가장 중요한 바탕은 선교자의 강렬한 하느님 체험입니다. 너무나 좋으신 하느님을 나 홀로 간직하기가 아깝기에 이웃들을 그분께로 안내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 그 마음에서 선교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내 삶이 고달프고 괴롭고 짜증난다면 양심상 어떻게 이웃에게 선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웃을 예수님께 초대하려면 다른 무엇에 앞서 먼저 내 삶이 행복해야 합니다. 나부터 주님 은총 속에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6. 칭찬하는 CEO, 예수님


   이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언행에 우리의 시선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는 엄청난 칭찬입니다. 복음서 그 어느 곳을 봐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한 사람을 당신 눈앞에 두고 크게 칭찬한 적은 드물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께서는 약을 치신 것입니다. 칭찬이란 약을. 예수님께서 이토록 극구 칭찬하셨던 나타나엘이란 사람은 과연 누구였습니까?


   오후에 무화과나무 아래 서있던 사람입니다. 무화과나무는 하느님 백성을 상징합니다. 메시아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지칭합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과연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메시아를 만나고 싶은 갈망을 지니고 기도하기 위해 무화과나무 아래 서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묵상하던 사람,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그는 반 이상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전교가 훨씬 쉽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미끼만 제대로 던지면 쉽게 걸려듭니다. 선교 대상자를 설정할 때, 그래서 확실한 결실을 빨리 보고 싶을 때 유의해야할 사항입니다. 될 성 싶은 사람에게 먼저 접근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 대한 이러한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의 신심, 그의 기도행위, 그의 의로움, 그의 정직함, 그의 사람됨,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잘 파악하고 계셨기에 극찬을 하시는 것입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된 업무 속에서 그나마 희망을 안겨주는 것은 직장 상사나 동료들의 따뜻한 한 마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칭찬에 유독 인색한 우리들입니다. 선진국에서 상사란 존재는 부하직원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사람인 반면, 한국에서 상사란 존재는 ‘스트레스의 요인’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마크 트웨인이란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한 마디의 칭찬으로 두 달을 기쁘게 살 수 있다.”


   최근 큰 프로젝트를 제대로 성사시킨 한 회사원의 이야기입니다. 직속상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회사원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답니다.


   그 회사원은 성과 자체보다 상사가 인정해준 점이 더 기뻤습니다. 상사로부터 인정과 격려를 받은 그 회사원은 그날부터 출근시간이 기다려졌답니다. 멀리서 직장건물이 눈에 들어오기만 해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답니다. 보십시오. 칭찬 한마디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 복음구절에서 우리는 칭찬하는 CEO로서의 예수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생활이 시작되자마자 예수님께서 역점을 두신 프로젝트가 ‘인재 양성’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타고난 리더였습니다. ‘인사가 만사’란 사실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단 모집과 양성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셨습니다.


   부족한 사람들, 때로 아직 기본적인 교양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뽑아 교육시키느라 예수님은 많은 고초를 겪으셔야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다양한 교육적 접근 방식입니다. 각 사람의 취향이나 성향, 수준, 상황에 적합하게 개별적으로 접근하십니다.


   나타나엘(하느님의 선물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은 진리를 향해 개방되어 있는 제대로 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당시 보기 드믄 유대인이었습니다.


   나타나엘의 인간됨됨이를 즉시 파악한 예수님께서는 그를 당신 제자단에 꼭 포함시키고 싶으셨던 나머지 즉시 효과를 보는 칭찬이란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칭찬도 보통 칭찬이 아니라 들으면 입이 찢어질 정도의 칭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칭찬의 강도가 얼마나 세었던지, 나타나엘은 이 ‘한방’에 훅 갔습니다. 완전히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자 사람은 거짓이 없다.”


   7. 예수님의 노하우


   나타나엘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 앞에서 또 다른 한 가지 교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만난 나타나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한 인간 개인의 고귀한 가치를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소중하다. 너는 가치 있다. 너는 대단하다. 너는 존귀한 존재이다. 너는 정직하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이런 칭찬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 안에 자존감, 용기, 사랑, 자신감을 부여하십니다.


   48절에서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 한 개인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제대로 된 이웃선교를 위해서는 선교대상자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에 대한 따뜻한 마음도 필요합니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친밀감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에 대한 사전 정보도 중요합니다. 또한 칭찬할 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냥 빈손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갖추고 다가가야 합니다.


   “나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점에서 정말 훌륭한 분이시더군요. 언젠가 제가 우연히 보니 당신이 관내 장애인 복지관에서 소리 없이 봉사하시더군요. 당신 알고 보니 참 사람이 됐더군요.”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8. 더 큰 지평을 열어주시는 예수님


   이러한 과정이 마무리되자 마침내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드디어 나타나엘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50절과 51절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습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보다 큰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보다 큰 것, 보다 아름다운 것, 보다 진실한 것, 보다 가치 있는 것, 보다 궁극적인 것, 이 세상 그 너머에 있는 것, 죽음을 넘어서는 것 말입니다.


   신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미인 이웃선교를 실천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선교 대상자들에게 이 세상 것들이 주는 위로나 기쁨을 훨씬 넘어서는 보다 차원 높은 삶에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간의 인간적, 자기중심적 삶을 깨트리고 하느님 중심적 삶, 이전에 못 느꼈던 행복한 사랑의 새 세상을 만나게 해줘야 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이 지상에서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단순한 육적인 것들의 재미. 인간적, 말초적, 감각적인 것들이 주는 흥미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감미로운 것인지, 영적인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미사의 은총이 얼마나 감미로운 것인지를 알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부터 먼저 확실한 하느님 체험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과의 감미로운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그분의 인간을 향한 한없는 자비, 애틋한 마음을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망망대해가 앞으로 펼쳐진 부산항이나 인천항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거기서 바다를 계속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특별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짐을 가득 실은 배가 항구를 떠납니다. 어느 순간 항해를 하고 나면 배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겠지요. 부산항을 떠난 배는 비록 지금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어느 바다위에 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또 다른 대륙의 아름다운 항구인 나폴리나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떠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할 때 이런 사실을 명확히 알고 선교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 세상 너머에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시작하셔야 합니다.


   오늘 비록 고달프고 힘들지만 언젠가 우리의 이 힘겨웠던 인생여정이 끝나고 바다를 건너가면 바다 저편에 사랑으로만 충만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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