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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천애인(敬天愛人)" - 8.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3 조회수393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8.23 연중 제21주일                          
여호24,1-2ㄱ.15-17.18ㄴㄷ 에페5,21-32 요한6,60-69

                                                        
 
 
 
"경천애인(敬天愛人)"
 


누구나 한 번뿐인 유일회적 선물인생입니다.
긴 것 같으나 짧은 인생입니다.
 
대략의 수명을 넉넉잡아 85 세로 삼아 내 나이를 빼내 보십시오.
 
남은 햇수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 중 아무리 많이 산다하여도
50년 이후 살아남아 있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짧은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
고위관리나 재벌이, 예술가나 학자 등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든 남편을 지극히 돌보는 무명의 아내나,
불구의 아내와 정답게 살아가는 이, 역시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삶의 제자리에서 경천애인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선택하고 투신하며
제 사명과 책임을 다하며 사는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참 아름답고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계명을 요약한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신문에서의 글귀가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크고 작은 사안으로 가까이서 김 전 대통령을 모시는 과정에서
  고인의 진정성 넘치는 경천애인의 자세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전직 어느 고위 관리의 술회였습니다.
 
더구나 경탄스러운 것은
임종 전 85세의 고령에도 매일 일기를 썼다는 것이며
그 내용이 구구절절 감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몇 구절을 인용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 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과연 여러분은 미흡하나 후회 없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애인(愛人)의 정신에 그대로 묻어나는 구절이 아닙니까?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고인의 깊은 신심과 경건심이 배어나오는 일기입니다.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있다.’

85세의 고령에 이런 청순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마지막 일기의 제목으로 삼은 1월7일자 일기입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영세 대부이셨던 성인으로 칭송 받는 고 장면 부통령을 닮아
참으로 낙관적이고 긍정적 인생관을 지녔던 참된 가톨릭 신앙인,
김대중 토마스 모어 전 대통령이셨습니다.
 
어떻게 훌륭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경천애인을 목표로 삼아
제 삶의 자리에서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선택과 투신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고
이런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하느님께 받은 선물 인생, 결코 되는대로 막 살수는 없습니다.

첫째,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서의 삶임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피해 갈 곳 어디도 없습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이시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거울 앞에서 부단히 내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선택과 투신을 늘 새로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세상 우상들 앞에서가 아닌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기준으로’입니다.
 
이래야 흔들림 없이,
세상 유혹에 빠지거나 휘둘리지 않고 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을 떠날 때
세상 유혹과 죄악에 휘말려 자기를 잃게 됩니다.
 
세상을 얻은 들 자기를 잃는다면 그 세상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래서 우리 수도자들이 끊임없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추스르며
경천애인의 선택과 투신을 늘 새로이 하는 은총의 공동전례기도시간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합니다.
 
그대로 공동전례와 같은 모임의 성격입니다.
 
다음 대목에서 찾아 낸 ‘하느님 앞에서’ 라는 말마디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모두 하느님 앞에 내세운 다음 선택과 투신을 촉구하는 여호수아입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여호수아의 촉구에 응답하여 집회에 참석하여 하느님 앞에 선 이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께 투신할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미사 때 마다
하느님 앞에서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께 투신함으로
주님만을 섬길 것을 약속합니다.


둘째,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하늘 높이 가지를 뻗습니다.
 
전통과 연결되어 살아있는 전통을 살 때
튼튼한 개인이요 나라요 종교입니다.
 
오늘날의 위기의 근원은 뿌리의 상실, 전통의 단절과 상실입니다.
 
남북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 경제의 위기를 말하지만
정작 위기의 근원은 뿌리 전통의 단절과 상실이요
이로 말미암은 정체성의 상실, 가치관의 상실입니다.
 
도대체 학교 교육 역시 이 면에서 속수무책입니다.
 
무한한 지식경쟁의 폐해가 정말 재앙의 수준입니다.
 
뿌리 있는 교육,
눈을 떠주는 지혜의 교육,
협동적이고 공동체적인 교육,
지정의(知情意)가, 지덕체(智德體) 조화된 전인적 교육이 전무한,
한 마디로 ‘사람이 되는’ 교육이 전무한,
오로지 생존경쟁의 교육에 망가지는 아이들이 참 불쌍합니다.

이스라엘 교육의 위대한 점은 뿌리 교육에 있습니다.
 
바로 이게 교회공동전례의 목적입니다.
 
학교에서 못하는 일을 이제 가톨릭교회가 맡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여호수아에 의해 하느님 앞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 역사 교육을 받습니다.
“우리와 우라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과거를 잘 잊어버림으로 반복되는 불행한 역사입니다.
 
나라든 공동체든 교회든 과거를 잘 잊는 망각의 병이 참 무섭습니다.
 
과거 없는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과거를 늘 새로이 성찰할 때
또렷해지는 정체성이요 선택과 투신의 결단입니다.
 
개인의 성소나 공동체에 위기가 왔을 때
지난 삶의 역사를 회상해보며
삶을 렉시오(독서)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셋째,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섬기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할 때 성령 충만, 생명 충만한 삶입니다.
 
오늘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교육이
아무 쓸모가 없는 육적인 것을 향하여 질주하는 현실 같습니다.
 
역시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해
선택과 투신의 결단을 촉구하는 주님이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다음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입니다.
 
미사 때 마다 이 고백을 하며
우리의 선택과 투신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고백이 우리의 선택과 투신에 활력의 원천입니다.
 
경천애인의 영성으로 살게 합니다.
 
2독서를 묵상하면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아름다웠던 부부관계가 생각났습니다.
 
진정 부부사랑에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인생입니다.
 
누구보다도 남편의 사랑을, 아내의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부부들입니다.
 
누구보다도 공동체 형제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공동체 형제들입니다.
 
멀리가 아닌 바로 가까이 살고 있는 이들의
사랑과 존경,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과 존경의 관계가 모든 인간관계의 원천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섬길수록 서로 간에 깊어지는 존경과 사랑입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를 소개합니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1.11).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2.7).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2009.5.2).

마지막으로 이 희호 여사가 입관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에 넣은 편지가 감동적이라 전부 인용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애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아내 이희호.“(2009.8.20).

하느님 앞에서 끊임없이 선택과 투신으로
새롭게 경천애인의 삶을 사는 이들이 진정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서로 존경하며 사랑하며 사는 이들이 정말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삶을 살도록 불림을 받고 있기에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입니다.
 
이 책임과 의무에서 면제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당신의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로
우리를 성령 충만케 하시어 경천애인의 삶을 잘 살도록 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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