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랑의 환상과 사랑의 진실---롤하이저 신부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6 조회수567 추천수2 반대(0) 신고
『호텔 듀락(Hotel du Lac』으로 유명한 영국의 여류작가 아니타 브루크너(Anita Brookner, 1928- )는 『Brief Lives』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젊을 때 슬픈 사랑의 노래를 듣게 되면 그 슬픔과 실망은, 사랑을 경험해봐서가 아니라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의 전주곡(前奏曲)으로 받아 들인다.
이는 우리들이 너무나 젊고 열정적이어서 사랑을 통하여 영원히 절정의 행복을 맛보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지만, 늙어지게 되면 절정의 행복은 극히 짧은 한 순간에 맛보게 될뿐이며 사랑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실망하게 되고 영원한 변신(變身)을 갈망하게 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절정의 행복은 극히 짧은 일장춘몽과 같은 것이라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절정의 행복을 맛보기 전까지 경험했던 어떤 슬픔보다 더 아프게 느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슬픈 사랑의 노래에 표현된 슬픔은 사랑의 유한성이나 다른 어떤 것을 노래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슬픈 사랑의 노래가 사랑의 전주곡인 좌절과 실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슬픈 노래의 제목을 좌절, 배신, 이루지 못한 사랑, 후회, 이별, 죽음이라 해야 할까? 사랑에 실패하게 되면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되는 수가 있다. 이럴 때에는 막연하게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며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 또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기도 한다. 또 배신을 느끼고 씁쓸해 하기도 한다. 또 이별을 아쉬워하기도 하며, 못다한 사랑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또 질투에 불타오르기도 한다. 모든 이러한 심정은 “못다한 사랑”의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전주곡이다. 모두 “못다한 사랑”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브루크너는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배신 당하지도 않고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질투하지도 않고, 헤어지지 않고, 사별(死別)하지 않은 사랑의 슬픔과 실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며 인간이 아무리 선하고 훌륭해도 하느님과 같은 사랑을 이 땅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오는 슬픔과 실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브루크너는 인간의 밀월관계(honeymoon)의 죽음 또는 불가능성에 대하여 우리들이 느끼는 심정을 말한 것이다. 인간의 밀월(蜜月)은 무관심, 권태, 또는 상대방을 속속들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미숙한 사랑, 신뢰의 상실과 같은 좋지 않은 이유 때문에 밀월이 끝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밀월은 좋은 이유 때문에 끝나게 되는 수도 있다.
 
밀월을 즐기는 동안 밀월 안에 숨겨져 있는 환멸감이나 실망이 오히려 더 깊숙한 관계로 이끌기도 한다는 점이다. 환멸감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환멸을 느낀다는 것은 “환상을 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밀월 동안에 느끼는 사랑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서로 너무나 진지하여 숨이 막힐 정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밀월 기간 동안 진심이 아닌 환상은 모두 버려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지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들이 달콤한 밀월에 빠져 있을 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거나 자신만큼 사랑하지 않는 수가 많다. 누구에게나 훌륭하고 열정적인 사랑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나 사랑의 원형(原形)을 갖고 있다. 즉 요한이 마리아와 사랑에 빠졌을 때 처음에는 모든 것을 바쳐 마리아를 사랑하지 않았고 마리아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 요한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여성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이 자신의 불안감이나 외로움을 사라지게 해 줄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숫제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사람은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주지는 못하고 하느님처럼 가까이에 있어 주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으므로 슬프게 되고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의 감정은 원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가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환멸감이나 실망감이나 슬픔이 슬그머니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과 결혼한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완전하다.
 
우리가 사랑에 환멸감을 느낄 때에는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 같은 사랑으로,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시라고 생각해야 한다.이것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변모하셨을 때 제자들이 “과연 예수님이었구나!”하고 깨달은 심정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밀월이 끝날 때 상대방의 변신을 보고 “나는 여태까지 인간 마리아만 보고 있었구나!” “나는 여태까지 인간 요한만 보고 있었구나!”하고 자책(自責)하게 된다.
슬픔이나 실망을 느끼게 될 때에는 자신을 더 낮추고 금욕적으로 살지 말고, 밀월관계에 있을 때 처음 그 사람을 만나 하느님 같이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을 했던 것처럼, 환상을 갖지 말고 변신한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면서 더 깊은 관계를 가지라는 계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