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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4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7 조회수357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안식일에 카파르나움에서 시몬의 장모님의 병을 고쳐 주시고 마을 주민들의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복음에서는 제자들은 안식일 날에 밀밭을 지나가며 밀 이삭으로 허기를 채웠으므로 사실상 추수행위를 하였으며 오늘도 회당에서 안식일 날 병자를 고쳐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을 고발하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속셈을 알고 계셨지만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의 경우에는 예수님도 난처한 경우입니다. 병자를 고쳐주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고발할 것이고 그렇다고 고통 받고 있는 병자를 모르는 척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 탓인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손을 쓰지 않고 말씀으로 환자를 치유하였으므로 바리사이들도 이런 경우에는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안식일 제도의 합목적성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으므로 요즘의 관점에 판단하면 바리사이들은 생각이 없는 단세포적인 인간들과 똑같은 것 같습니다. 이런 바리사이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안식일 논쟁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 좌와우 등 여러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렇게 분별하는 것에 대하여는 동의하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바리사이와 같은 사람들은 오직 '좌빨'이라는 단어 하나로 여러 가치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을 잠재우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들은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육당하였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유럽의 경우에는 외부와 교류가 거의 차단된 상태에서 유대인만 사는 구역인 게토가 있습니다. 그 실상을 보도한 다큐를 보면 그들의 교육은 전통을 주입시키고 유지하는데 급급하여 어린 아이들은 합리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육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 5일근무가 대세이지만 아마 우리 그리스도교가 태동되지 않았다면 안식일도 없으므로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했을 것이므로 안식일은 우리 인류가 영원히 양보할 수 없는 참으로 제도입니다. 안식일처럼 좋은 제도도 그 합목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면 안식일에는 병을 치료하지도 못하는 등 오히려 제도의 피해자가 되는 숱한 병폐가 있음에도 이를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안식일에 관한 논쟁은 이를 깨우쳐 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며 예수님이 바라셨던 것은 유대교의 여러 제도도 안식일처럼 잘못 운용되고 있으므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있는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어제 묵상에서는 안식년 제도를 신부님들에 대한 배려의 차원인 아닌 다른 목적으로 잘못 운용한 경우를 묵상 하였습니다. 안식년 제도는 신부님들의 수고에 대한 배려차원으로 통상 10년마다 1년식 휴식기간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요건이 되는 신부님들의 의사를 존중하되 교구의 형편을 감안하여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식년에 대하여 처음 들었던 기억은 20여년 전에 초, 중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가 신부가 되어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다녀온다고 상경하여 다른 친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처음 들었던 같습니다. 저는 이때에 천주교는 신부님들께 1년씩 휴식도 배려하므로 참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좋은 제도가 배려가 아닌 전혀 다른 목적으로 운영하여 오히려 제도의 피해를 보고 계신 신부님도 계시므로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는 그 제도가 추구하는 합목적성에 맞게 운영되어야 하며 합목적성에 벗어나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오늘 복음의 안식일처럼 오히려 사람을 구속하는 족쇄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제도의 운용은 어차피 사람이 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칼도 선한 사람이 사용하면 활인검이 되지만 악한 사람이 사용하면 살인검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제도도 이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과 같은 좋은 여러 제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초 목적에서 변질되지 않았는지, 우리 주위에도 이렇게 변질된 제도가 있다면 합목적성에 맞게 유지되어야 함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안식일 법으로 저희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모든 제도는 만인에게 공평하고 자비를 실천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데 있으므로
모든 제도는 이러한 합목적성에 벗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깨어있어 이를 감시할 수 있도록
지혜와 자비의 성령님을 저희에게 가득 부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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