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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4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09 조회수474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 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속담인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로 잘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속담은 '한번 陰하고 한 번 陽함을 道라 이른다'(一陰一陽 謂之道)는 주역의 구절에서 유래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하거나 희망을 잊지 말고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대거나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그리고 올바른 예언자를 구분하는 가르침을 알려주시고 계시는 것으로 요약하여 묵상을 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음과 양이 교체하는 이러한 하늘의 이치를 우리 동양에서는 道라 하고 있으며 우리 신앙에서는 음이 양이 되는 것을 하느님의 나라로, 그리고 이럴 수밖에 없는 이치(道)를 하느님의 뜻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예수님은 모두 깨달았기에 하느님의 뜻을 민중들에게 알려서 지금 고통 받고 있는 민중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대는 사람들에게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서 회개하라 하시며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지금 일부 잘 나가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과 음양에 이치에 따르면 이는 축복도 아니며 감사드릴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장차 도래할 불행에 대비하여 선업을 쌓아야 하고 이런 선업을 쌓는 것이 바로 자비와 사랑의 실천일 것입니다. 자비와 사랑의 실천은 이처럼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음에도 우리끼리 모여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드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하는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도 바라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참되게 감사드리는 방법은 우리 주위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이 참되게 감사드리는 길이며 우리 주위에 불우한 이웃이 없어야 비로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금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여 위로 받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필요해서 교회를 찾아 온 것이며 하느님을 찬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리기 위해서 미사를 드리고 있으므로 교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환영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며 반대로 교회가 물질적으로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은 교회에서 조차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교회에도 오지 못하는 버림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부유한 사람들에게, 지금 배부른 사람들에게, 지금 웃고 있는 사람들에게 장차 너희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고 선포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오늘 말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할 수 없으면 최소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지금 슬퍼 우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고 위로라도 해주는 것이 그나마 가르침의 반쪽은 실천하는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현실은 그나마 오늘 가르침의 반쪽이라도 실천하는 분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오늘 성경 말씀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욕하고 중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부님들에게 힘이 되어 드리고자 하는 교우들은 마치 순명을 거부하는 것처럼, 오직 순명이라는 말 한마디로 아무런 합당한 이유도 없이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명해야 합니다. 사제에게 순명하고 사제는 소속 교구장에게 순명해야 합니다. 그럼 교구장은 누구에게 순명해야 합니까? 교구장은 하느님의 뜻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하여 하느님의 뜻인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고, 이런 순명이 저희에게 바르게 전달된다면 그 누가 순명을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은 순명이란 단어만 앵무새처럼 외우고 있으며 왜 순명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늘 예수님께 시비를 거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순명만 앵무새처럼 외우고 있으며 율법학자들은 복음 말씀은 아직 접하지 못하였는지 교리서만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의 일부 가르침은 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 누가 하느님의 뜻을 판단합니까? 하느님의 뜻은 이제 그 누구의 고유 권한도 아니며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복음으로 이미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이 달리 복음입니까?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고 오직 교회 지도자들만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으므로 순명을 강조한다면 차라리 중세처럼 우리가 성경을 접할 수도 없고 글자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상태라면 그나마 합당한 이유라도 될 수 있으나 지금 우리는 중세에서 살고 있지도 않고 복음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무지몽매한 상태도 아니므로 제발 우리 교회도 이제 중세의 향수에서 그만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배부른 사람들에게, 지금 웃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행을 선포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아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런 자들에게 불행을 선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셨으며, 이런 자들에게 아부하는 자들이 거짓 예언자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참된 예언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런 참된 예언자는 불의한 자들에게 박해를 받을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누가 참된 예언자고 거짓 예언자인지, 누가 참된 목자고 삯꾼인지를 정확히 분별하는 가르침을 주고 계시며 제자들에게는 절대 이런 거짓 예언자가 되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 역사는 불행하게도 예수님이 당부하신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그 반대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닌듯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예수님은 눈을 들고 특별히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이런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 말씀만큼은 꼭 실천하라는 간곡한 당부가 담겨 있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분들은 하느님의 뜻에, 복음 말씀에 순명하셔서 저희들도 교회 지도자분들에게 순명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이런 간절한 청원도 음모라고 비난하고 있으므로 모두가 침묵하는 것 같습니다.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게 하시는 공평하신 하느님이시기에, 비록 제가 당장 내일이라도 음지에서 고통 받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나 공평하신 하느님이시기에 감사 드릴 수 있기를,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알려 주셨습니다.
지금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참된 예언자이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배부른 사람들에게, 지금 웃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자들은 거짓 예언자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할 줄 알고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이치를 깨달아 
언제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무지한 저희에게 깨달음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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