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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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순 | 작성일2009-09-11 | 조회수46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 23주간 금요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때에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너 자신을 알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하신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려준다고 하여 이것이 전부가 아니므로 마치 하느님의 뜻을 전부 아는 것처럼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너희들은 앞으로 민중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여 너희들 자신부터 지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다는 뜻에서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살면서 자주 느낀 점이지만 설익은 지식으로, 그나마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지식으로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처럼 꼴불견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서 지행일치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민중들을 인도할 수 있으나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눈먼 이들이 민중을 인도하는 것은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구덩이에 빠져도 혼자만 구덩이에 빠져야 하지만 위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다 아는 것처럼 속여서 지도자로 행세하며 민중들까지 구덩이에 빠뜨리고 있다는 말씀이므로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선자들은 자기 자신도 누군지 알지 못하면서 하느님을 다 아는 것처럼, 하느님의 대리자처럼 행세하고 민중들은 그들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이 생각하시기 에는 참으로 한심하였을 것입니다. 내 자신부터 똑바로 알아야 하느님을 알 수 있음에도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다 알고 있는 냥 민중들을 이끌고 있으니 말입니다.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하신 말씀은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너희들 자신부터 부단히 노력하여 지행일치의 삶을 살아서 민중들이 너희들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늘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지행일치의 삶을 통해서 말이 아닌 몸으로 민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느낀 점이지만 지금 우리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것을 염려하시여 오늘은 아예 스승이 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시고 계시며 또, 이와 같은 말씀으로는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마태 23,8-9)"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런 당부는 안중에도 없고 '神父'와 '牧師'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마 신부라는 칭호를 없애자고 하면 난리가 날 것입니다.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기희생이 따르므로 부단한 수행을 해야 하지만 복음 말씀과 배치된 이런 호칭은 개선하였으면 하는 생각마저도 불순하게 받아드리는 실정이므로 어느 때는 차라리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복음 말씀과 우리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여 주님께 하소연하는 마침기도로 오늘 묵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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