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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과 선교이야기..............차동엽 신부님
작성자이은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4 조회수1,083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경과 선교이야기..............차동엽 신부님 

 

영국의 유명한 크롬웰장군은, 한 전투에서 적이 쏜 탄환을 왼쪽 가슴에 맞고 쓰러졌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는 일어났는데, 총탄은 갑옷 속을 뚫고 들어가다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성경에 꽂혀 있었다고 한다.
차동엽 신부님의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경’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이 된다.

 탄두가 멈추어버린, 전도서 12장 1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크롬웰 장군이 그랬듯이 늘 성경을 가까이 지니고 읽으면, 어떤 형식으로든지 은총이 크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용기와 지혜를 얻었을 것이며, 뜻밖에도 복음말씀을 사랑하던 그의 목숨을 구해 주는 기적의 도구로도 작용했던 것이다.
 둘째, 탄두가 멈춰 섰던 위치의 성경말씀이 신선한 메시지를 준다. 아직 젊었을 때에 일찌감치 하느님을 우러르고, 그 하느님 뜻을 조심스레 물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경을 읽으면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생긴다.
 첫째,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가장 행복할지 알고 계시기에 하느님 말씀을 따름이 바로 행복의 비결이다.
 둘째,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인내와 희망을 갖게 해준다. 좌절에 처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성경 말씀은 우리가 갈 길을 비추어 준다.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나, 옳고 그름이나 우선순위를 식별하는 데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넷째,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준다.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마 10,17). 무엇보다도 믿음이 쑥쑥 자라나야 하느님을 깊이 만날 수 있으며, 큰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말씀을 자주 들어야 한다.
 말씀은 참으로 '순수하고 신령한' 양식이다.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1베드 2,2).

 ‘뜨거운 선교사명 품고 하늘 뜻 따라’ - 불타는 선교영성으로 차동엽 신부님은 ‘송해붕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고 있다. 인천교구 고촌성당에 부임하면서 알게 된 분으로, 고촌공소를 세웠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6ㆍ25때 무명으로 순교하였다.
 "보통의 열성은 보통의 일밖에 못한다. 봉건사상에 젖고 유도사상(儒道思想)에 박히고 미신숭상에 젖은 삼천리강산의 동포무리를 진리의 성령으로 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보통이 아닌 초자연적 열성과 둘째, 예수성심에 취한 열성으로 피눈물의 희생과 고통을 극복하는 정신이어야 한다."(송해붕 세례자 요한의 '좌우명 십계' 중에서)

 송해붕 세례자 요한은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났으며, 신학생 생활을 하던 중 야학을 운영하며 전교활동을 벌였고, 그의 신앙과 열정은 가는 곳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리스도 제자가 되도록 변화시켰다. 그러나 6ㆍ25 당시 주민밀고로 총살을 당하고 말았는데, 그분 유해를 발굴할 때, 널판지에는 장미넝쿨이 우거져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고 한다. 그분은 생전에 전교에 온 힘을 다 했으며, 제자들에게도 항상 전교를 강조했다. 한번의 인연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그것도 증거자가 생존시 공을 들였던 두 장소에 부임하게 된 사실에서, 차동엽 신부님은 증거자가 가슴에 품었던 전교열심을 대물림하라는 하느님섭리로 느끼고 큰 소명감을 갖게 되었다.

 “송해붕 세례자 요한, 그분은 죽었지만 살아 있습니다. 가슴에 '삼천리강산의 동포무리'를 품고 있었지요.
만일 그분이 이 시대에 살아 계신다면, 필경 아시아선교, 나아가 세계선교를 꿈꾸었을 것이며, 그분을 기억할 때마다 이러한 선교비전이 용솟음침을 느끼게 됩니다.” 
 

 

 

 

 

 

 

 

 

 

청년 송해붕 세례자 요한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그는 1926년 경기도 부천구 계양면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모태 신앙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계산 초등학교, 인천 기계 공고를 거쳐 44년 4월 덕원신학교를 편입하여 신학생 생활을 하던 중 45년 해방 이후 사제가 되기 위한 학업 과정을 중도에 포기하고 계양구 귤현동, 고촌 은행정 마을(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은행정)로 들어가 야학을 운영하며 전교 활동을 벌입니다.

이후 몇 년 간 은행정과 누산리 공소(현 김포시 양촌면 누산리)를 오가며 펼친 전교 활동은 가히 성인의 수준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앙과 열정과 수고는 가는 곳마다 청년이고 어른이고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변화시겼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내 별명은 공기돌이야. 공기돌이 무슨 뜻인고 하니 누구든 아쉬운 때 갖고 놀고 싶은 만큼 갖고 놀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라는 의미지, 여러분은 이제부터 공기돌 놀이하듯 나와 함께 신나게 공부해 보자."
이렇게 해서 청년 송해붕을 공기돌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사람들에게 버려진 공기돌이 될 때 하느님께서 진주로 여겨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익숙하거나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뽑아 교리와 병행하여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 가르침이 얼마나 명쾌하고 재미있고 엄했던지 당시의 제자로서 지금 생존하는 이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청년 송해붕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천주교가 동네에 전파되는 데 반감을 가진 주민 일가의 밀고로 빨갱이로 몰려 총살형을 당하고 맙니다. 그의 죽음은 신앙 전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순교였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과 함께 묻혔으나 그의 십자가와 새까만 주단과 묵주가 썩지 않아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시체와 함께 있던 널판지에는 장미 넝쿨이 우거져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이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계양산에 묻혔다가 김포 성단 묘지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청년 송해붕 세례자 요한은 평소 세례자 요한처럼 살다가 순교하기를 소원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선교 열정을 못다 쏟아냈던 고촌 공소에는 인촌교구 고촌 성당이 들어섰고 그가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던 누산리 공소에는 인천교구 사목연구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성인의 반열에서 오늘도 살아 활약하고 계십니다.

위의 공기돌이 전하는 말은 그가 괘도에 적어 교우들에게 반복 주지시켰던 일종의 생활 지침입니다. 당신께서 천천히 읽으면서 그 깊은 뜻과 그 강렬한 분발심과 그 큰 안목에 심취하기를 바랍니다.

송해붕 세례자 요한, 그는 한 개인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삶을 살았습니다.

당신께서 "그가 교회였고, 그가 교회를 세우는 또 다른 그리스도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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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교재는 10월 중 발간 예정입니다.

             교재문의 : 031-985-2804 미래사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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