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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4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5 조회수40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27<또는 루카 2,33-35>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고통의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성모님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방법이 없었으므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런 고통이 따를 것을 알고도 기꺼이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며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랑하는 아들마저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고 있으므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아들이 고통 받으며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한나절동안이나 지켜봐야 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비참한 경우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오늘은 마리아가 성모님이란 생각을 버리고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까지 이처럼 고통 받고 있는 여인을 위로하며 마지막 가르침으로 우리 모두는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을 유언으로 알려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온 소식을 듣고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마태 12.48) 하고 반문하셨으며 또한 "너희는 모두 형제다" (마태 23, 8)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인연을 심지어는 혈연마저도 초월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걱정하였다는 것은 이 말씀들이 무색하기만 하므로 의아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떠나시면서 까지 성모님께 "여인이시여" 이렇게 부르셨던 이유가 오늘 복음을 접할 때마다 늘 의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에수님은 성모님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無分別智에 이르신 분임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모님께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신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의 어머니이시고 또 익명의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신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바로 네 어머니시다는 마지막 큰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형제라 하였으므로 '내 어머니'와 '네 어머니' 이런 분별이 있을 수 없으며 '내 자식'과 '남의 자식' 이런 분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하였습니다. 익명의 제자가 성모님을 집에 모신 것은 성모님이기 때문에 자기 집에 모신 것이 아니라 자식을 억울하게 보내고 비통해하며 오갈 곳 없는 이 땅에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여인을 자신의 어머니로 알고 집에 모신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이제야 “여인이시여” 하신 말씀의 의미가 분명해 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금 우리는 내 어머니가 아니면 내 아버지가 아니면 어느 분이 길바닥에 쓰려져 있어도 못 본 척 하고 지나갑니다. 어린 아이들이 점심을 굶고 있어도 내 아들이 아니므로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추석이 곧 돌아오는데 차례를 지내야 할 용산참사 현장의 우리 이웃들은 오늘로서 참사 238일 되었음에도 장례조차도 치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만 하면 왜 제가 죄인이 되어야 하는지, 제발 저희를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우리 교회에 부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형제라 하였다 하여 우리 교우들끼리 형제자매로 잘도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형제의 의미는 이런 호칭을 말씀하신 것이 아님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신자들은 대부분 각 가정에 성모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모신 이유에 대하여 저는 오늘 한 가지 이유를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제 집에 성모님을 모신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 땅의 어머니 한분을 제 집에 모셔서 부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설사 제 집에서 제가 직접 모시지 못한다하여도 그분들을 제 대신 부양하는 곳이 있으므로 그분들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있다는 것을 성모님을 뵈올 때마다 기억하려고 합니다.

불쌍한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는 여러 행위를 봉사라고 합니다. 그들이 모두 우리 형제자매이고 부모님이므로 봉사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자기 부모 형제에게 하는 행위를 누가 봉사라 합니까? 이는 마땅히 해야 할 사람의 도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봉사하는 것은 봉사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이웃에게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 우리 부모에 대한 효이며 형제애입니다.

내 부모 형제에게 도움을 주었다하여 남에게 자랑할 일이 못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쌍한 우리 이웃에게 행하는 일은 자랑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요즘은 형제자매간에도 쌈질을 하고 부모를 버리는 자식도 있다지만 우리 그리스도 교인들은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예외로 하고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이고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땅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오늘은 이처럼 묵상해 봤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이며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네 어머니이시고
이 땅의 모든 자녀들은 네 자녀임을 잊지 말라는 말씀을
십자가에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시고 떠나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더라도 이 사실만큼은 잊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늘 깨우쳐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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