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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15일 야곱의 우물- 요한 19,25-27 묵상/ 여인이시여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5 조회수605 추천수3 반대(0) 신고
여인이시여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첫 쉼터를 시작했던 곳은 수녀원 수련원 자리였다. 수련원 수호성인은 ‘통고의 성모님’이시고 9월 15일에 축성되었다. 수련원이 파주로 옮겨간 뒤 그 춥고, 썰렁한 건물에서 가출한 십대 여자 청소년들의 쉼터를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통고의 성모님’도 쉼터의 수호성인이 되셨다. 주보성인 탓일까? 끼가 넘치고 자유분방한 가출한 십대 여자 청소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마치(감히) 그 하루하루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을 바라보는 십자가 길의 성모님이다.

우리의 삶은 자주 고통의 연속이다. 성모님의 일생도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아니 예수 탄생 예고 때부터 고통으로 이어졌다. 성모님의 고통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았던 슬픔과 고통을 말한다. 십자가 밑에서 아드님 예수가 희생제물로 숨을 거두실 때까지 그의 모든 수난과 고통을 함께 걷고 지켜보신 어머니는 그렇게 아들 예수의 수난에 참여하신다.
그래서 당신이 겪으셨기에 우리를 위로해 주시리라 희망할 수 있으며, 당신이 이 같은 고통을 이겨내셨기에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도 모두 이해해 주시고, 우리가 이겨내도록 당신 아드님께 전구해 주신다는 신뢰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며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어주신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혈육으로 이루어진 부모와 자식 관계를 한 단계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증인들을 통해 새로운 가족관계로 열어주신다.
오래전 선배 수녀님 한 분이 “우리는 생전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그 ‘절절한 사랑’을 살아보지 못하고 하느님 앞에 나갈 것이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그 속이 썩고 애가 타는 사랑을 우리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이 가장 겁난다.” 하는 나눔을 듣고 ‘내가 원하는 것도 저런 것일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했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 쉼터 아이들의 삶에 빠져들었다.

지난 10년간 쉼터에서 나는 참 많이 울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예기치 못한 급환으로 두 분의 동료 수녀님이 이른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울었다. 주변의 많은 만남과 헤어짐 때문에도 울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 너무 깊숙이 끼어들었기 때문에 울었다. 아무래도 영문도 모르고 쉼터의 주보가 되신 ‘통고의 성모님’ 때문에 울 일이 켜켜이 쌓였던 듯하다.
아이들은 거칠지만 단순해서 어떤 시기가 지나면 나와 실무자들한테서 엄마를 만나고, 아빠를 만난다. 자신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애증이 서린 부모’로 여기기도 해 아이들 생애 동안 쌓아놓은 상처를 거칠게 품어내기도 한다. 그 품어냄이 일시적인 분노로 나오기도 하고, 자신을 병들게 하는 정신적 병리현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어릴 적 꼬마아이를 친척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났던 아버지가 10여년이 지난 뒤 주검으로 나타나 친자 확인을 요구하는 경찰의 출두요구를 받기도 한다. 아이는 이미 오래전에 친척집을 나와 거리에서 지내다 쉼터에서 살고 있었다. 어떤 아버지는 정신질환으로 폭력을 휘둘러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막내딸만 쉼터에 와서 살다가 경찰의 연락으로 홀로 죽은 아빠의 사실 확인을 위해 불려 간다. 쉼터의 아이들 모두 십대이건만 아이들의 삶의 경험은 너무 모질고 고통스럽다.
지금도 여전히 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어머니와 자녀,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엄마 아빠, 형제자매로 ‘이가 꼭 맞는’ 가족이 아니라 부모가 떠난 자식들과 자식 없는 엄마(?), 이모·삼촌이 어우러져 예수님이 맺어주신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이루어 낸다. 형태만 가족 꼴을 이룬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쉼터에 오기 전에 일어난 많은 삶의 역사에 깊숙이 개입한다. 함께 가슴 아파하고,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기뻐한다. 아이들을 야단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감정적으로 맞서기도 하고, 서로 소리치며 싸우기도 한다. 서로의 삶의 증인이 되어주고, 버팀이 되어준다.

아이들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통해 긴 고통을 걸어왔고, 그 고통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다. 아이들한테는 그 고통을 이겨내는 동안 함께 울어주고, 함께 희망을 찾고 함께 견뎌줄 새로운 가족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이 새로운 가족을 맺어주시고 생명을 주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딸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이시다.’
김정미 수녀(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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