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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17일 야곱의 우물-루카 7,36-50 묵상/ 죄 많은 여자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7 조회수513 추천수5 반대(0) 신고
죄 많은 여자

그때에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22년 전 종신서원 수련을 위해 로마의 국제수련소에 있을 때 모든 수련자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다녀왔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미술관 건물 자체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름다워 시간 가는 것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 많은 작품 중 대부분은 기억에서 없어지고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한 작품이 있다.
 
처음 그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나무조각상을 무심코 봤을 때 나는 ‘세례자 요한’인 줄 알았다. 많은 화려한 조각상 속에서 갈색의 목각상은 얼핏 보기에도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허리띠로 두르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 부스스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얼굴에 핏기 하나 없어 보였다. 낙타 털옷도 오래 입으면 누더기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목각상인데도 세세한 모습이 살아나 온몸으로 말을 건네는 듯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마르 1, 3. 6)는 말씀을 떠올린 채 조각상 앞에 멈췄는데, 실상 그 목각상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는 달랐다. 그래도 세례자 요한이려니 하고 목각상과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중에 제목을 보았다. 세상에,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나는 놀라 다시 목각상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디에도 그 화려했다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모습은 없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도록 몸은 마르고, 아무런 장식을 걸지도 두르지도 않은 비쩍 마른 맨발뿐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수련을 받고 있기에 180도 달라진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체험하면 저렇게 될 수 있는가? 나는 성심수녀회를 통해 종신토록 예수 성심께 나를 봉헌하겠다는 서원을 곧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예수님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을까? 내게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는 회개와 삶의 전환이 은혜로 주어질까? 나의 결단은 어떤가, 그렇게 살고 싶은가? 수없는 물음과 부러움이 올라왔다.
 
바리사이들은 그 여자가 ‘죄 많은 큰 죄인’인 드러나는 현재의 모습만 보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하고 판단하면서 결국 예수님마저 자기들 수준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실상은 바리사이들의 판단은 맞았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하는 가정적인 판단은 옳아서 예수님은 ‘죄인’인 여인에 대한 죄 사함과 그 이후의 여인의 삶에 대해 ‘보이는 것 너머’를 내다보고 계셨다. 바리사이처럼 ‘눈 앞의 죄’의 현상을 바라보시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할 것’을 보고 계셨고 ‘더 큰 용서를 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고 그래서 자신의 생애를 바쳐 예수님께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었다
김정미 수녀(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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