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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일행의 살림살이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8 조회수40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예수님 일행의 살림살이 - 윤경재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 8,1-3)

 

초등학교 시절에 예쁜 여자 담임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깨끗하고 흰 얼굴에 가지런히 매만진 머리에서 늘 향기가 났습니다.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공부시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런 선생님께서 화장실에서 나오시다가 저와 눈이 마주치셨습니다. 움칠하며 놀라는 제게 살짝 웃어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서는 화장실에도 다니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가 놀랐던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왜 미소를 띠셨는지 아주 나중에야 이해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언뜻 떠오르는 장면이 왜 초등학교 시절 추억인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주님이시라서 돈도 필요 없고 골치 아픈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있으리라고 짐작했었습니다. 이슬만 드시고 사셨을 거라고 오해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복음서 내용 중에 아무리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난의 말이 나오더라도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살림살이에 찌들어 지내지 않으셨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탓입니다.

우리는 가끔 엉뚱하게 어떤 인물을 신화화하는 오류에 빠집니다. 그래서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동시에 인성도 취하셨다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서 7,27절에서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 하며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인성으로 오신 예수님만 뵙고 신성의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생각은 어쩌면 양 극단에 치우친 상반된 시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이 잘못 생각했다고 지금 우리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범접할 수 없는 신으로서 하늘 어디 한구석에 모셔 놓고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분으로 여긴다면 그것도 잘못된 생각일 겁니다. 

루카 저자는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열두 제자를 언급하는 데에 문제점이 생길 것이라고 예견하셨습니다. 분명히 여자 제자들도 예수님 일행과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확실히 언급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루카 저자가 활동할 당시 초기 교회 공동체에는 여성 봉사자가 어떤 직분을 맡아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는 그 뿌리가 예수님 당시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일행이 필요한 살림살이에 큰 역할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왜 예수 일행에게 필요한 살림살이를 여성들이 맡은 것으로 언급했는지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정이나 공동체에는 반드시 재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재화를 규모 있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데는 여성의 능력이 뛰어납니다. 올바른 분배에는 사랑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융통성도 발휘해야 합니다. 나대지 않고 적절한 사용을 위해 그 몫을 여성들이 차지한 것입니다. 자금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칫 작은 권세를 휘두를 위험이 따릅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재정부문에서 비리가 많습니다. 일행의 돈주머니를 맡았던 유다가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것도 이런 점에서 묵상거리입니다. 무엇인가 자신의 손으로 일을 벌일 수 있다고 착각한 결과입니다. 여성의 섬세하며 순종적 성향이 살림살이에 더 적당합니다. 

예수께서 일상의 모습을 어떻게 지내셨을지 루카저자는 오늘 복음에서 보여 줍니다. 화가가 풍속화를 그려 역사적 사실을 남기듯이 루카저자도 그랬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예수 일행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며 사랑과 자발적 나눔으로 부족한 살림살이를 메웠으리라고 상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환상 속에서 예수님을 신화적 인물로 가상하고 바라보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삶의 자리를 진솔하게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는지 모릅니다. 먹고 마시고 생리현상을 하셨을 예수님을 떠올리는 것을 터부시했는지 모릅니다. 신앙은 내가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난 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실제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대로 사는 것이 참 신앙일 것입니다.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일상이 우리 신앙의 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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