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9.20 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지혜3,1-9 로마8,31ㄴ-39 루카9,23-26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오늘 한국 순교자 대축일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의무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2003년 미국 미네소타주에 소재한 성 요한 수도원에서
9월20일 미사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마치 한국의 축제날 같은 미사분위기였습니다.
미사 전 간략한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설명에 이어
미사 후에는 여러 수사님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으니
참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세계 전 가톨릭교회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매일 미사 책은
오늘 대축일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오늘의 축일은 한국출신의 103위 순교자들을 기념한다.
그들은 19세기 수차례의 박해동안 그들의 생명을 주님께 바쳤다.
김대건 안드레아는 최초의 한국 사제였고,
정하상 바오로는 평신도 선교사였다.
세분 주교와 일곱 사제 외에
전 연령대에 걸쳐 영웅적 평신도 순교자들로 이루어진
한국순교자들의 축일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여행 중 1984년 이들 모두를 성인품에 올렸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소개된 내용이라 인용했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가톨릭교회 순교자들의 후예인 우리들입니다.
9월의 무르익어가는 순교성월에 맞이하는 오늘
한국순교성인들 대축일은
‘과연 순교적 삶에 충실하고 있는지’
우리의 순교적 삶을 성찰하는데 참 좋은 날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힘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이 순교의, 순교적 삶의 원동력입니다.
하느님 믿음, 하느님 희망, 하느님 사랑의 절정의 표현이 바로 순교입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의 감동적인 고백이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사랑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늘 읽어도 감동적인 내용이라 대부분 인용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확신이 넘치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입니까?
하느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체험했을 때,
하느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내 삶의 전부가 되었을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고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순교적 삶을 한 구절로 요약해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바뀌어도 이 진리만은 영원합니다.
사람이 되는 길,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
성인이 되는 길은 이 길 하나 뿐이 없습니다.
비단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참 사람이 되려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자유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세례 받았다 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평생 이렇게 살아야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아직 끝나지 않는 십자가 길의 우리 여정입니다.
자기를 버림이 우선이요,
주님을 사랑해야 자발적으로 자기를 버릴 수 있습니다.
이기적 인간의 특성상 가장 힘든 게 자기를 버리는 일입니다.
제일 쉬운 게 남 판단하는 것이요
제일 힘든 게 자기를 아는 일이란 말도 있듯이
자기를 버리는 겸손이 제일 힘듭니다.
억지로 자기를 버리는 일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 있어 자연스런 자기 버림입니다.
주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 합니다.
역설적으로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자기를 버려갈 때
충만한 참 나의 실현이라는 말씀입니다.
가을이 되면 저절로 열매가 익어 떨어지듯이
사랑으로 익었을 때 저절로 떨어지는 이탈의 열매가 자기 버림입니다.
주님 사랑과 함께 가는 자기 버림입니다.
자기를 버려야 제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버림으로 끝이, 완성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바는 자기 버림으로 끝나는 무책임한 도사가 아니라
제 책임의 십자가란 짐을 지고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끝까지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제 고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운명 같은 십자가의 짐입니다.
긍정적 요소뿐만 아니라
부정적 요소의 떨쳐버리고 싶은 제 십자가의 짐은 얼마나 무겁습니까?
이 모두의 제 십자가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평생 날마다 죽을 때까지 제 십자를 지고가야 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피할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제 고유의 십자가의 짐이요
이 십자가의 짐을 지지 않고 사람이 되는 구원의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주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의 힘이 제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합니다.
이래야, 사랑의 힘으로 제 십자가를 져야
몸과 마음 무너지거나 망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십자가의 짐을 가볍게 해달라거나 치워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사랑의 힘, 믿음의 힘, 희망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게 좋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목표 없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시는 주님이 우리 삶의 방향이자 목표입니다.
이래야 방황하지 않고, 숙명주의에 빠지지 않고
역동적인 제 십자가의 길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앞서가는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런 우리를 주님께서도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우리 또한 앞서가시는 주님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부끄럽게 여기면
주님께서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의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정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바로 순교적 삶입니다.
참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성인이 되는 길은 이 길 뿐이 없습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바로 1독서의 의인들입니다.
이들의 삶은 밖에서 볼 때는 고난으로 여겨지겠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때로 사람들이 보기에 이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음 말씀은
바로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지칭한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입니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니,
주님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한국순교성인들의 대축일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제 십자가를 지고
항구히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은총과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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