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고승 양관선사는 화를 내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장자인 그가 출가했으므로 그의 아우가 집안의 대를 이어야 했으나 그에게도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였는데 이자가 이만저만 망나니가 아니었다. 참다못해 파양을 논의하는 문중회의가 열리고 양관선사도 불려간다. 그러나 선사는 문중 사람들이 이구동성 파양의 이유를 꼽는 내내 침묵한다.
마침내 집안의 큰어른인 양관선사에게 최후 결정의 한마디를 재촉하는데 선사는 대꾸는 않고, 이제 그만 절로 돌아가야겠다며 마루 끝으로 가 걸터앉는다. 이때 예의 망나니가 파양 운운에 침묵으로 일관한 선사가 고마웠던지 그의 발에 짚신을 신겨준다. 툭! 짚신 끈을 묶는 망나니 손등으로 뜨거운 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망나니가 고개를 드니 흠뻑 젖은 노인의 눈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 물 한 방울! 그것이 온 문중이 손 뗀 망나니를 바른길로 돌려세웠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왔을 때 말없이 땅에 글자를 쓰시던 모습이 그려진다. ‘나를 따라라.’는 한마디에 따라나선 세리와 죄인들을 당신의 식탁으로 불렀다가 바리사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과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시며 의연하던 분, 예수님은 자비 때문에 2천 년 동안 매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때때로 매달린 모습에 울화가 치민다. 왜 자비인가? 꼭 저래야만 했나. 어물쩍 묻고 있다. 설마 나는 자신을 의사가 필요 없는 ‘튼튼한 이’로 착각하고 느긋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오싹해진다. 내가 갈팡질팡할 때 그분의 단호한 한마디 ‘나를 따라라.’를 나는 얼마나 많이 놓쳤을까? 다시 오싹해진다.
이난호(서울대교구 구로1동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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