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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22일 야곱의 우물-루카 8,19-21 묵상/ 부끄러운 모정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2 조회수528 추천수6 반대(0) 신고
부끄러운 모정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1987년 12월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지만 부정 투표로 얼룩졌다. 사태는 ‘구로구청 점거’로 이어졌고 그 진압과정에서 내 아들과 동갑인 이 군이 구청 옥상에서 추락, 허리뼈가 으스러졌다.

바로 전해, 내가 처음 본 그는 해맑은 웃음 때문인지 대학 2학년인데도 소년 같았다. 그때 이 군의 어머니는 얼마 전 최전방에서 생을 마감한 이 군의 형에 대해 묵상했다. 비리가 만연하던 시절 그의 집안은 이른바 최고위층과 선이 닿을 만해서 큰아들은 편한 군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본인이 이 검은 묘수를 단호히 거부하고 수순에 따라 배치된 곳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 그 올곧은 아들에게 묘수를 부리려 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모정을 고백하는 이 군의 어머니가 내 눈엔 초인이었다.

그리고 일 년 뒤, 이 군은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앉아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들이 몸과 마음 바쳐 구현하려 했던 것들은 얼마쯤 당겨졌을까.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라고 하셨다. 실행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말씀’은 그 실행으로만 비로소 ‘말씀’일 수 있다는 진리를 나는 수없이 듣고 읽고 묵상하며 끄덕였다. 그러나 그뿐, 나는 데모대에 끼어드는 내 아들에게 제발 앞장서지 말고 어물어물하다가 꽁무니 빼라고 줄기차게 주문하면서도 가책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집 아이들이 내 아이 대신 희생되기를 추호도 바라지 않았다. 그랬지만 나는 이 군의 휠체어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님, 이 군의 저 맑은 웃음을 지켜주소서. 그가 희망했던 걸 기억하소서. 그리고 용서하소서.” 내내 이 군의 미소를 피해 눈길을 다른 데 두고 속으로 성호만 긋고 또 그었다.
이난호(서울대교구 구로1동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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