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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푸신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2 조회수1,278 추천수1 반대(0) 신고
종교와 같이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해묵은 의문이 있다.
그렇게 선하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어떤 사람을 영원히 지옥으로 보내실 수 있을까?
자비로우시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영원히 지옥에 가도록 벌하실 수 있을까?
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지옥에 보내시지 않고 영원한 벌을 내리시지도 않는다. 하느님께서는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지만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느냐는
우리 각자의 선택에 맡기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자신이 자신을 심판하고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지옥을 만드시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무도 지옥으로 보내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옥이 없다는 말은 아니며 우리가 지옥에 갈 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아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보내셨으며 그 생명을 취하느냐 거부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 선택을 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판단한다.
생명을 선택하면 하늘을 선택한 것이 된다.
생명을 선택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아무데도 보내시지 않는다.”
 
지옥은 우리들이 고통을 겪도록 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만드신 벌이 아니다.
지옥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곳이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지옥이 없다거나 지옥에 갈 가능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지옥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정의를 위해, 복수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만드신 벌이 아니며 무딘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밝혀내기 위한 곳도 아니다.
지옥은 생명이 없고 사랑이 없고 용서가 없고 이웃이 없는 곳으로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거기에 보내시지 않는다.
사랑이 없거나 이웃이 없으면 결국 가게 되는 곳이며 살아 있을 때 우리들에게 제공된 사랑과 이웃을 거부하여 자초한 결과이다.하느님께서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푸신 것이다.
존 쉐아(John Shea)가 말한 바와 같이
“지옥은 사랑과 용서와 이웃을 거부한 생명의 꽃으로 가득 찬 곳으로, 행복한 사람을 놀라게 하려고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사르트르가 말했다. 지옥은 타인이다.” 이의 역(逆)도 성립한다.
지옥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우리 스스로 선택하여 경험하는 곳이다.
인생은 삼위일체가 있는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여 더불어 사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게 된다.” 이러한 사랑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낭만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느님 안에 머문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생명 안에 사는 사람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의 역(逆)도 성립한다.
더불어 살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 바깥에 살게 되며 그 곳이 곧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옥은 어떠한 곳인가? 지옥을 성경의 여러 곳에서 표현하고 있지만 아주 다양하며 모호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옥을 영원히 불타오르는 불바다로 생각하고 있는 수가 많다. 성경에서는 지옥을 “하느님의 분노를 경험하는 곳”, “결혼식이나 무도회 바깥에 있는 것”,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면서 슬퍼하고 눈물 짓는 것”, “게헨나(*)로 넘겨지는 것”, “벌레들에게 잡아 먹히는 것”, “불”, “연회(宴會)에 초대받지 못하는 것”, “하느님 왕국의 바깥에 있는 것”, “슬픈 마음으로 사는 것”,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같은 곳을 말하고 있다.
지옥은 무례하게 이웃과 더불어 살지 않을 때 경험하는 고통과 슬픔이고 불이며
스스로 자초(自招)한 것이다.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 결코 아니다.
하느님은 죽음을 다루시지 않을뿐더러 아무도 지옥에 보내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하느님께서 생명과 죽음을 다루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생명만 다루신다고 말씀하셨다.
죽음의 원천은 거짓말을 하는 곳, 자기 합리화, 괴로움, 무딘 마음, 지옥과 같은 곳이다.
하느님께서 지옥을 만드시지도 않았고 아무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신다고 말한다고 해서 악이 없다거나 죄가 없다거나 벌이 없다는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자기 스스로 심판하는 데에 따르며 심판하는 사람이 지옥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지옥을 만드시지도 않으셨고 아무도 그곳에 보내지도 않으시며
우리들이 지옥을 만들고 스스로 지옥에 가는 것이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요한 3:16-21)
예수님께서는 지옥을 만드실 필요도 없었고 악인을 지옥에 보내실 필요도 없었다.
 (*주); 불붙는 지옥”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게헨나 투 푸로스(gehenna tu puros)”는 히브리어 “게힌놈(gehinnom)”에서 온 것으로 원래 의미는 “불의 게헨나”라는 말이다.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이방인, “물록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산당이 있던 곳이었다(2열왕 23:10). 요시아 왕 때 예루살렘의 우상들과 신전을 파괴시켜 그 잔해들과 시체들을 이 골짜기에 내다 버렸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생각하는 것조차 혐오스러운 장소를 뜻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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