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 자신으로부터의 시작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3 조회수590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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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회복의 첫 걸음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을 떠나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방황할 때
이제는 과거 믿음의 작은 불씨조차
죄와 허물에 가려져 사라지려 할 때,
그 때 우리는 자신에게 남아있는 힘을 다해
주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 여겨지고
삶의 모든 부분이 황폐해졌을지라도
주님께 손을 내미는 그 순간
우리는 자신 속에 숨어있던 깊은 외로움을
만지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메마른 곳곳마다 죄의 담이 무너져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은총을 맛볼 것입니다.
회복은 그 분께 손을 내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영혼의 작은 씨앗

우리가 누리는 축복은
누군가에게 나누어줘야 하는
영혼의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은 내 안에 있을 땐
씨앗으로 남게 되지만
누군가에게 나누어지면 꽃을 피우게 되고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아름다운 ‘섬김’의 씨앗입니다.
나눌 때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로워 집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나누어 보세요
.


성장의 과정

육체가 자라날 때도
성장통을 겪는 것처럼
우리 영이 자라날 때 역시
고통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순간은 결코
좌절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기억
해야 합니다.
고통을 통해 우리의 불필요한 부분들이 잘려나가
주님 앞에 정련된 금과 같이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지금의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주님께로 더 가까이
자라나게 할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백배의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빈 자리

많은 것을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한 부분,
그것은 주님만이 채울 수 있는
우리의 참 생명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 삶이 전부라고 말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우리에게 이 삶이 전부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워가고 계십니까?
주님을 알아도 주님으로 채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진 않습니까?
주님만이 우리 맘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


닫힌 문을 여는 용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불의한 것과 연약한 것을 용서받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우리 각 사람을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
그렇기에 우리가 마음속에 미움을 품고 있을 때
그 분은 우리에게 먼저 미움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
미움과 다툼이 머무는 곳에
주님은 함께 계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나, 자신으로부터의 시작

자신에게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을 만나면
우리 대부분은 상황이 변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또 대부분의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곤 합니다.
이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의 중심에 서기를 기대하십니다
.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기를 힘쓸 때
우리 주변의 상황들이 변화될 것임을
주님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운 변화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 갈 것입니다
.

(새벽종소리 참조)




[9월 24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9월 24일,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은 로마가 통치했습니다. 그들은 총독을 보내 이스라엘을 지배했지만, 겉으로는 왕이 다스리는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당시 임금은 ‘헤로데 안티파스’로, 헤로데 대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자신과 부인 ‘헤로디아’를 비난한다고 요한 세례자를 죽게 했던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소문내자, 헤로데 임금은 만나고 싶어 합니다.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는 주장에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신비스러운 사건’은 쉽게 사람들의 주목을 끕니다. ‘기적과 예언’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누구나 한번쯤 가 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정말 ‘신비스러운 사건’은 성경 안에 넘치도록 있습니다. 성경의 기적에는 잠잠하면서 사람들의 소문에는 ‘혹한다면’ 성숙한 모습이 아닙니다. 먼저 ‘주변의 기적’에 눈떠야 합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디에나 기적의 꽃은 피어 있습니다.

신앙인은 기적에 놀랄 사람이 아닙니다. 평생 기적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우주를 만드신 분을 모실 수 있습니다.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체 안의 예수님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기적을 보고 예언을 들어도 ‘호기심의 만족’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헤로데의 모습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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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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