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아, 비가 너무 오니까 심란합니다.
성체대회 날짜는 바득바득 코앞에 닥치고 할 일은 태산 같고......
준비할건 많은데 저 원망스러워요.
그래 어저께 하도 심란해가지고, 밤부터 비 또 왔죠?
여긴 왔어요. 다른 쪽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래 내가 예수님께 전화를 드려서 면담을 청했어.
예수님 계신데 직통전화번호가 몇 번 인줄 아시죠?
73국에 4627.....또 어떤 분은 열심히 적어요.^^
거기 백날 걸어봐야, 왜 73국이예요?
왜 4627이예요?
앞에 46은 구약성서 숫자, 뒤에 27은 신약성서 숫자, 46 더하기 27하니까 얼마가 나와요? [ 73 ]
그렇죠. 그래서 하늘나라 직통전화는 73국에 4627이야.
우리 주교님한테 전화 한번 하려면 뭐 비서를 통하고, 수녀를 통하고 하여튼 되게 어려운데 예수님한테는 73국에 4627만 딱 걸면 직빵으로 터져요.
그러니 어제 예수님이 주무시려고 하다가 전화를 받으셔서
“주님, 혹시 저 아십니까?”
“암, 성모님 성지 지키는 토마스구나!”
“아이구,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하두 심란해가지고.... 이거 쪼끔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살아봐도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이거 지금 성체대회를 앞두고 큰일 났습니다.” 하니깐 예수님 당신도 아, 그것 땜에 심란해 죽겠데요.
그래서 원인을 두 가지를 얘길 해주셔, 왜 비가 내리는가!
첫 번째는 인간의 잘못이다.
이 온난화 때문에 하두 매연이 많아서 공기가 순환이 안 되다 보니깐 자꾸 더워지는 거예요.
그게 첫 번째 그래서 인간들이 그렇게 자연을 파괴해도 그래도 그동안은 기를 쓰고 조절을 했데요. 근데 세상에 올 3월 달에 이 날씨 조절하는 천사가 축구하다가 다리가 부러진 거야.
그래가지고 고향으로 보냈더니 세상에~~ 오질 않는데요.
그래서 지금 알바 하는 천사들을 계속해서 번갈아 바꿔서 하는데, 아~~이게 이게 스위치를 맨 날 잘못 누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다음부터는 감곡성당 지은 임 가밀로 신부님을 알바생으로 쓸려 그런다.
그래서 아무튼 “예수님 아~ 성체대회 올해 89찬데 신경 좀 써주십시오. 아주 속이 탑니다. 비가 하도 와서 준비를 못하고 내일도 우리 교우들 교중미사 끝나자마자 대청소를 해야 되는데 이 비 맞고 이거 이거 해서 되겠습니까?”
“그래 아무튼 내일은 내가 직접 한 번 엔진을 점검해야 되겠다. 오전까지는 아마 오더래도 오후부터는 안 올 테니깐 그냥 청소 시키거라.” 그러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비 온다고 튈 생각하지 마셔.^^
결론은 버킹검이야.
결론은 내 그거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변함없이 대청소가~~ 벌써 우리 이 주째 미뤘잖아요. 일요일마다 비가 쏟아져서....
근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비가 오더라도 안팎으로 대청소를 해야 됩니다.
순교자 성월, 오늘이 마지막 날인가요?
맞죠? 순교자 성월 마지막 날 이예요.
제가 한 달 내내 순교에 대한 이야기를 순례자들에게도 많이 강조했고,
우리 교우들에게도 많이 강조했어요.
순교는 육적인 순교가 있고 영적인 순교가 있다.
육적인 순교에 이르기 위해서는 영적 훈련이 필요한데
영적순교의 첫 번째 단계는 뭐라 그랬어요?
지 화를 참는 것이다!
지 화도 못 다스리면서 어찌 육의 순교를 하겠느냐?
두 번째 순교는 뭐라 그랬습니까?
혓바닥을 다스릴 수 있어야 된다.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면서 어찌 육의 순교를 하려고 하느냐?
세 번째 영적순교는 악습으로부터 해방되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
그것이 세 번째 영적순교고 이 앞에 세 가지를 충실히 하다보면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 뭐냐? 원수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미운 놈을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은 인간의 의지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화를 다스리고 혀를 다스리고 자기 악습으로부터 해방되려고 하는 처절한 노력이 있을 때 거기에 대한 그 모습을 보시고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지 사랑하자, 사랑하자....
하루에 수천 번을 외친대도 미웠던 놈이 하루아침에 이뻐지지는 절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은총을 받으면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지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가 아니겠는가?
여러분 지난 한 달 동안 여러분의 분노를 잘 다스렸습니까?
저도 사제지만은 어찌 분노가 안 일어나겠습니까?
답답한 환경에 처하면 분노가 일어나고 그리고 신자들에게 말은 못하지만 여러 가지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죠.
저는 정말 순교하는 마음으로 어제까지 참 잘 살았는데 어제 오후에 전화 한 통화 때문에 제가 뚜껑이 열렸습니다.
그 전화가 무슨 전화였냐고 하면 택배를 배달하는 어느 택배배달원이 감곡성당을 자꾸 묻는 거예요.
“어디에 계십니까?”하니까 감곡면사무소 앞에 있대!
“아, 그러면은요. 그 앞으로 쭉 오셔. 그럼 감곡초등학교가 있고 화랑마트 지나고 매괴 중고등학교만 찾아서 들어오면 성당은 하나니까 아, 모르면 물어보라고 감곡신자들 성당 모르는 사람 없다고.....”
아 근데 오 분 있다가 전화가 또 오는데 주변에 감곡성당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파출소에까지 들어왔는데도 파출소 순경들도 감곡성당을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 뚜껑이 열리죠.
“아니 당신 지금 나랑 장난 하냐 말이야. 당신 택배한지 얼마 되었길래 어떻게 그렇게 모르냐?” 니깐 아 그땐 그 사람이 또 화를 내며
“나 5일 됐수.”
그러더니 전화기로 막 둘이서 씩씩거리고 막 그러다가 아이구, 이거 막 뚜껑이 막 열려.... 도대체가 이거 면사무소가 바로 코앞에 있는데 거기서 여기 못 찾아 오냐고?
이제 한참 막 열이 서로 받쳐 하다가 그 내용물이 뭐냐고 하니까 과자래요. 또....
거기 주소가 뭘로 되어있냐고 읽어보라고 그랬더니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 읍으로 되어있대.
세상에~~ 난 감곡에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근데 정읍에 감곡이 또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택배 배달하는 사람은 전라북도 정읍 그렇게 써 있대니까 서울에 있는 교우가 나한테 과자를 보내기 위해서 경상도에 있는 과자회사에다가 분명히 충청북도 감곡이라고 얘길 했는데 그 회사 직원들이 어디 전라도 사람이 거기서 일을 했는지
‘아~ 감곡, 전라북도에 있지 하면서 전라북도 이렇게 아까 무슨 시라 그랬죠? 아~ 정읍시 감곡면 이렇게 적어놓은 거예요. 그러니 택배 배달하는 사람은 전라북도에 가서 감곡성당을 찾으니 나는 환장하지요.
분명히 면사무소 앞까지 왔대는데 감곡성당을 모른다니.......
그래서 어제 차~암~ 둘이서 얼마니 기각 막혔겠어요.
이 내막을 알고 허허 웃음밖에 안 나고 서로 사과를 했어요. 미안하다고, 또 그 사람도 “아이고 손님 죄송합니다. 여기서 지금 이거 들고 충북감곡까지 가기는 너무하니까 다시 반송을 해서 그쪽에서 바로 충청북도 택배회사로 보내는 게 빠르겠습니다.”
참 어저께도 저자신이 지고 난 다음에 참 부끄러웠습니다.
“야~ 한 달 내내 아~ 화가 나고 그럴 때마다 꾹꾹 참고 하느님께 봉헌했는데 이 엉뚱한 주소하나 때문에 내가 또 이렇게 뚜껑이 29일 날 열렸구나!”
순교하는 것이 예정대로 그 수순에 밟아서 순교할 기회를 기다린다면야 누구라도 순교하기 쉽겠죠. 그러나 순교는 예상치 않았던 전화 한 통화 그냥 뚜껑이 열리고 남이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예상치 않았던 환경에 처했을 때, 온 영혼이 분심덩어리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약한 우리들이 아닌가?
저는 그래서 다시 한 번 어제 깨달은 것은 ‘아~ 전화도 조심하자.’
두 번째로 깨달은 사실은 ‘대한민국에 감곡이 두 군데가 있구나.’
이 엄청난 사실은 저는 어저께.....
우리 감곡신자들 첨 알았죠?
알았어요?
알았어요? 예~~
근데 난 왜 안 알려줬어요? 웃겨죽겠네 정말~~
난 감곡이 하나밖에 없는 줄 알고서는 택배회사 직원하고 그토록 싸웠어요.
순교는 분노를 다스리고 혀를 다스리고 악습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겠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무관심으로부터 해방이 돼야 되요.
뭐로부터요? 무관심
동네에 라자로라고 하는 걸인이 있었습니다.
성서에는 안 나와 있지만 아마 예상하기로는 분명히 앉은뱅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가 지 두발로 못 걸어가니까 동네사람들이 들어다가 부잣집 문 앞에다가 놨겠죠?
온몸이 헌데 투성이고 고름이 줄줄 흘러내려도 지가 그 고름 닦을 힘조차 없어 그러니까 동네 개들이 와서 냄새 킁킁 맡으면서 혓바닥으로 그 상처를 핥아도 개들 쫓아낼 힘조차 없었던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는 라자로가 등장을 합니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비참하고 불쌍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뱃속에 있는 태아들이 아닌가!
맞습니까?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지요?
엄마가 지켜주지 않고 아빠가 지켜주지 않으면, 뱃속에 있는 태아는 스스로 살아갈 재간이 없어요.
그런데 그 컴컴한 뱃속에서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하는 말을 듣겠지요?
“내일 가서 지워, 연년생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나 자신 없어, 깨끗하게 지우고 와, 도장 여기 있어!”
그 소리를 듣고 아이는 바들바들 떨기 시작할 겁니다.
“아, 내가 저주 덩어리였구나. 축복덩어리인줄 알았더니 엄마 아빠가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구나!‘’
뱃속에서부터 낙태시켜야겠다는 부모의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 아프고
그렇게 비참하게 갈갈이 찢겨죽은 아기가 천당에 가겠습니까?
천만의 말씀!
그래서 무기력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첫 번째 라자로는 뱃속에 있는 태아들입니다.
두 번째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1초에 5000명이 전 세계에서 굶어 죽어간다고 그럽니다.
그들이 게을러서 죽는 것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계속된 가뭄 때문에,
가진 자들의 폭력 때문에....죽어갑니다.
게을러터져서 죽는 것이 아니라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제가 11년 전에 아프리카 선교를 갔을 때, 미국신부님과 같이 찦차를 몰고 에디오피아 사막을 지나가는데 사막 군데군데마다 해골, 뼈다귀가 있었고 그 해골 옆에는 부서진 항아리조각이 있어요.
그 미국신부님이 설명하기를
“이 시체가 뭔지 압니까? 백리 길을 아이 물을 먹이기 위해서 물을 뜨러 왔다가, 그 흙탕물을 떠가지고 가다가 굶어죽은 엄마의 시체입니다.”
여러분들 하느님께 감사하며 사십시오!
너무너무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이렇게 밥 세 끼 먹고 살만한 때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주부들, 음식 아끼십시오, 그 엄청난 음식찌꺼기들 막 버립니다.
1초에 5000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음식 함부로 버리는 것
심판거리입니다. 이 굶주리는 사람은 도와야 됩니다.
분명히 라자로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라자로는 권력과 힘 앞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는 그런 사람들, 때로는 힘없는 자가 죄인이 될 때가 있습니다.
힘의 논리가 그렇습니다.
정의가 그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솔직히 감옥에 있는 사람 다 죄인이겠습니까?
저는 교도소수인 사목을 6년 동안 했습니다.
수많은 교도소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 이 사람은 정말 죄가 없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힘없고, 돈 없고, 빽 없고, 줄 없고, 변호사 댈 능력조차 없어서.... 억울하게 희생양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 나갑니다.
오늘 복음으로 다시 돌아오면 호사스럽게 사는 부자는 손 닦고 버리는 식빵쪼가리로 라자로를 먹여 살렸습니다.
유대인들의 부자는 밥 먹을 때 물로 닦지 않고 식빵으로 손을 닦아서 밑에다 던지면 기르던 개들이 와서 식빵쪼가리를 주워 먹었는데 그 지 손 닦고 버리는 식빵쪼가리로 거지를 먹여 살렸다고
‘그래도 저 거지는 내 덕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하면서 흐뭇해했을 겁니다.
라자로와 부자가 둘이 다 죽었습니다.
부자는 지옥으로 떨어졌고, 라자로는 할아버지 품 안에 안깁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은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
다시 말하면 무한히 용서하라고 하신 그분이 분노하실 때가 여러 번 있었지요?
언제 예수님이 분노하셨습니까? 기억나시는 분?
성전에서의 정화?
거의 다 그것 하나는 압니다.^^
또 어디서 분노하셨습니까?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이 독사의 족속들아!”
또 어리석은 말을 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예수님이 여러번 분노하신 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분노라 하지 않고 의노라 그럽니다.
뭐라고요? <의노>
우리들이 하는 째째한 분노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들은 손해 보기 싫어서, 참으면 덕이 될 것을 가지고, 뭐든지 밝히려고 기를 쓰고 분노합니다.
참으면 덕이 될 걸......
그리고 의노를 보여야 될 땐 꼬리를 딱 감추고 맙니다.
분노할 때는 분노하지 못하고, 참아야 될 것 가지고는 밴댕이 콧구멍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싸우고 뎀빕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우리 차원이 아니라 의로웠습니다.
예수님의 의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방해가 되는 조직이나 사상이나 체계, 이 모든 것 앞에서 예수님은 강한 의노를 보이셨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싸워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그 당시 권력자들에게 대항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뒤엎었죠?
그 장사꾼들은 대사제들의 직속장사꾼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대사제들이 보고
“저 놈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 우리 체제에 도전하는구나. 저것 죽이자!”
오늘 예수님께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어주면서 예수님의 의노의 대상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는데 예수님의 의노의 대상의 첫 번째는
무관심의 죄 속에 사는 사람들이 될 겁니다.
무관심하다는 말은 무책임하다는 말과 통합니다.
고백소에서 주님이 정말 듣고 싶으신 것은
“주일 몇 번 빠졌습니다!” 하는 이야기도 물로 해야 되지만
정말 듣고 싶으신 것은 ‘니가 니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과 기도와 용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살아가느냐!’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배도 익으면 하느님께 고맙다고 노랗게 물들이면서 감사의 표시를 합니다.
감도 익으면 자기 색깔대로 표현합니다.
유독 우리 사람만이 감사하는데 얼마나 인색한가!
부자가 지옥에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라자로에게 악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도 넘한테 손 안 벌리고, 남이 손 벌리더라도 뭐 니 일 니가 알아서 해라!
나 죄 안 짓고 착하게 살면 천당 가는 것 아닙니까?
성서에 착하게 살면 천당 간다는 말 한 마디도 없습니다.
적극적인 선을 베풀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이 부자의 비유를 들어주시면서 부자는 지나다니면서 라자로에게 주먹질한 적도 없고, 매질한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식빵을 가지고 라자로를 먹여 살렸지요.
부자가 지옥에 간 직접적인 원인은 악행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부모님에게 잘 하십시오.
얼마나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자식들이 많습니까?
얼마나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자식들이 많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 무관심하지 마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미사 때만 와서 하느님 찾는 게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하느님과 통화하십시오.
저 어저께 누구랑 통화했다고 그랬어요?
저는 틈만 나면 적어도 사제는 하루에 다섯, 여섯 번 이상을 하느님과 통화합니다.
자꾸 깨지는 내 모습을 다잡아갑니다.
분심 중에 있는 나를 정화시킵니다.
일주일에 주일미사 앉았다 가는 것, 안 됩니다.
규칙적으로 기도하십시오.
무릎 꿇으십시오.
그게 바로 우리가 무관심의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주님의 의노의 대상 두 번째는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의노의 세 번째는 자기 법에 얽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네 번째는 온갖 착취하는 사람이었고
마지막 다섯 번째 주님의 의노의 대상은 성전을 더럽히는 거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 안에 살아가는 교우들이 서로 험담하고, 혀로 죄를 지어서 성전을 분열시킨다면 예수님의 분노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늘 영혼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하느님보다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분노의 대상이 분명히 될 겁니다.
오늘 우리들은 내 주변에 라자로가 없는지 살펴봅시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불쌍한 라자로!
그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7. 09. 30일 연중 제 26주일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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