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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28일 야곱의 우물- 루카9,46-50 묵상/ 하느님보다 경찰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8 조회수419 추천수2 반대(0) 신고
하느님보다 경찰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동행을 잃어버렸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이 가끔 목소리를 높이는, 여행자들이 약간 꺼리는 루트에서였다. 동행은 카미노(길,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일컬음)가 처음이었지만 신앙심이 깊었고 끈기도 지구력도 믿을 만해서 내가 방심한 탓이었다. 늦가을 해는 짧고 인가 하나 없는 첩첩산중이었다. 굵은 비가 내려 잠시만 멈춰서도 한기가 살을 파고들었다. 길가에 배낭을 부려놓고 오던 길로 뛰었다가 되돌아 뛰기 두 시간여, 결국 나 혼자 숙소에 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밤이 깊었을 때 영어통역을 동반한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새삼 사고의 크기가 실감되어 절망했다. 하느님은 멀고 그분 힘을 빌릴 염치도 없었다. 카미노를 앞두고 드렸던 9일 기도의 은혜는 진작 까먹었다는 인간적 계산이 나오자 죽을 맛이었다.

나는 네 번의 산티아고 순레길을 무사히 마치면서 은연중 하느님의 가호를 확신했다. 그러나 정작 그분의 능력이 절실한 순간에 나는 불길한 생각만 부풀리며 지옥을 오가는 것이다. 주변엔 비를 피할 곳 하나 없다, 겨울비는 밤들면 언다,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에게 인질로 잡힌다면? 어둠 속을 헤매다 낭떠러지를 구른다면? 온갖 해괴망측한 상상을 끌어다 간을 졸였다. 나는 이미 내 얇다란 신심을 부끄러워할 여유도 없었다. 경찰관에게 당장 주변 산을 수색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들은 어이없어하다가 내일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동행의 신심에 매달렸다. “하느님, 제발 저를 데려가시고 그를 살려주십시오. 그는 무죄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밝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튿날 동행은 나를 보고 어린애처럼 웃었다. 나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크게 외치는 순간 가슴이 따끔했다. 어린애처럼 하느님께 전적으로 기댄 동행은 편한 밤을 보냈구나. 하느님께보다 경찰을 붙잡고 늘어졌던 나는 당연히 지옥을 오르내려야 했구나.
이난호(서울대교구 구로1동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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