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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30일 수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30 조회수896 추천수15 반대(0) 신고
 

 9월 30일 수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 루카 9,57-62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수사님께서 남기신 유품 한 박스>


   저희 공동체에서 그간 모시고 있었던 할아버지 수사님의 임종과 장례식 때문에 한 몇일 바빴습니다. 돌아가신 수사님께서는 첫 한국 살레시오 회원이셨고, 한 평생 낮은 곳에서 굳은 일만 골라해 오신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돌아보니 수사님은 젊은이들로만 이루어진 저희 공동체에 큰 선물이자 기쁨이었습니다. 기나긴 투병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지요. 늘 장난스런 얼굴로, 손을 꽉 쥐시며 후배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시던 재미있던 어르신이셨습니다.


   수사님을 묻고 돌아와, 수사님께서 머무셨던 방에 들어갔었는데, 어찌 그리 황망하던지요.  수사님께서 남기신 소지품을 훑어보면서 다시 한 번 수사님의 가난하고 검소한 삶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겨놓고 떠나신 것은 겨우 낡은 옷가지 몇 벌, 이젠 구식이 된 라디오 하나, 쓰시던 안경, 틀니, 다 합해서 한 박스도 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당신을 위해 물건을 사지 않으셨던 분, 거의 외출이나 외식을 하지 않으시며 공동체 안에서 머무르시던 분, 단 한 번도 공동기도에 빠지지 않으셨던 분, 언제나 먼저 팔소매를 걷어붙이시고 삽을 드시던 분, 참으로 좋은 모범을 저희 후배들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언젠가 제가 건강문제로, 또 성소문제로 오락가락할 때였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아 결국 ‘떠나기로’ 거의 마음의 결정을 짓고 수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수사님께서는 길게도 아니고 딱 한 말씀만 해주시더군요.


   “서원한 수도자가 가긴 어딜 가! 그냥 계속 가! 가다보면 길이 생겨!”


   단 한마디 말씀, 단순한 말씀, 투박한 한마디 말씀이었지만 선배로서 방황하는 후배에게 건네주신 참으로 값진 말씀이었습니다. 수사님께서 제게 건네주셨던 그 말씀을 이제 저는 후배들에게 다시 건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도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들을 때 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었건만,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이쪽에 한 발, 저쪽에 한발,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주 돌아다보니 삶이 비뚤 비뚤, 흔들리고 방황하기 마련이지요. 뒤를 돌아보느라 앞에 있는 암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된통 크게 넘어지기도 합니다. 뒤를 돌아보다 큰 나무에 부딪쳐 피투성이가 되기도 합니다.


   한 평생,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시고 오로지 수도자로서의 삶에 충실하셨던 수사님, 아무리 큰 풍랑과 시련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던 바위 같던 수도자, 그리고 영예롭게도 가난하고 겸손한 수도자의 신분을 간직한 채 삶을 마무리하신 수사님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수사님의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님께 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번 서원한 바를 죽기까지 지키겠다는 투철한 수도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앞만 바라보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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