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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이 맞은 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 한상봉
작성자김수복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30 조회수447 추천수2 반대(0) 신고
 
당신이 맞은 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2009년 09월 27일 (일) 19:55:38 한상봉 isihan@nahnews.net
 

   
▲하느님의 연인, 헨리 나웬
헨리 나웬은 1996년 9월 21일에 이승을 떠났다. 그는 1985년 장 바니에를 만나고 1986년부터 죽기까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새벽 라르슈 장애인 공동체에 머물며 그들과 함께 살고 아파하며 기도하고 행복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그래, 심장이 멎으면 죽는 것이구나,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사랑하기를 그칠 때 우린 이미 시체구나, 생각했다. 그가 죽기 전 약 일년 동안 쓴 일기가 번역되어 책으로 나왔다.

8월 28일 수요일, 생애의 마지막 날을 스무날 남짓 남겨놓은 시간에 그는 ‘용기’에 대해 묵상했다. “용기를 지닌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어 말한다. “용기는 극적인 몸짓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용기는 흔히 작고 후미진 곳에서 시작된다. 쑥덕공론에 가세하고 남의 등 뒤에서 험담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웃는 것은 용감한 것이 아니다. 이웃을 좋게 생각하고, 비록 우리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더라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불안해 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전쟁과 폭력과 학대와 부정한 조작을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이 용감한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예언자들이 죽고 나면 그들을 칭송한다. 과연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기꺼이 예언자가 되고자 하는가?”

나웬은 여기서 자신과 세상을 두고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놓았다. 하느님의 자비와 우정,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운명적 연대감을 표현했다. 이 사람을 우리가 특별히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공감하는 이유는 이 모든 지혜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좌절감을 끌어안으며 더 깊은 곳을 응시하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분,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고정희는 ‘사십대’란 시편에서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사실상 정신없이 달려온 삽십대를 훌쩍 넘어 이젠 50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처지에 종종 곤혹스러움을 경험한다. “그래, 십년만 더 젊었으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후회를 그때에도 반복하리란 걸 뻔히 알고 있기에 부질없는 투정을 이내 거두어버린다. 그리고 추스릴 인연들을 헤아려보고, 손꼽아 가늠하며, 부고장을 쓰듯이 종잇장에 그 이름들을 빼곡히 적어보는 것이다.

   
 

수년 전 전라도 무주 산골짝에 살 때는 그랬다. 여름날 고추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추를 따고, 비닐하우스에 널어 둔 고추들을 일일이 손으로 뒤집어 말리며, 모가지를 타고 흥건히 내리는 땀을 나뭇그늘에서 씻었다. 견디며 견디며 더위 속에 앉아 있으면 가느다란 바람에도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날렸다. 그 참에 담배 한 모금 빨고 뿜어내며 격렬한 노동의 뒤끝이 주는 생의 희열을 잠시 누린다. 세월은 계절을 견디는 것이고, 그 갈피에서 희망을 건져내는 게 영성이다. “아, 좋다”하고 말이다.

그렇게 육신을 고달픈 희열에 맡겨둘 수 없는 지금은, 묵은 책갈피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어 누린다. 삶의 껍질만 스치듯 살아온 메마른 시간들을 반성하는 몸짓으로 쿰쿰한 책장을 넘기며 안심한다. 김수영, 이성복, 황지우, 김사인, 함석헌, 나웬과 토마스 머튼, 그리고 도로시 데이... 생각을 돌이키면 끝도 없이 나올듯한 이름들 속에서 읽어버린 나의 초상을 찾아보는 시간은 행복하고 편안하다.

<연민>이라는 첫 번째 산문집을 썼을 때, 발문에 적어둔 이성복의 시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 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성복을 책에서나마 만나서 공감할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 지 모른다. 그 사람들의 기억은 나를 외로움에서 구출하고, 부박한 삶에서 각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고...이 세상에 나 같이 사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발견’은 경이롭고 행복한 경험이다. 그렇게 ‘사람’을 통해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득하지만 편안하고, 손에 닿을 듯한 생기를 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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