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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름 모를 23세 청년'의 영혼을 위한 기도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30 조회수527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름 모를 23세 청년'의 영혼을 위한 기도
                            세상 떠난 영혼들을 챙기는 아내의 특별한 기쁨





매년 설날과 추석, 두 번의 명절 때마다 '조상들을 위한 합동위령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세 개씩의 미사예물봉투를 준비한다. 올 추석에도 당연히 조상님들과 근래에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세 개의 예물봉투를 준비하여 지난 주일(27일) 오후 성당 사무실에 접수했다.

언젠가도 한 번 공개했던 얘기지만, 일년 두 번의 명절 때마다 합동위령미사 예물봉투를 세 개씩 준비하는 것은 하느님 신앙 안에서 세 갈래의 조상들을 모시고 사는 까닭이다.

봉투 하나에는 우선 내 친가 쪽 근래에 세상 떠난 영혼들의 이름을 적는다. 다섯 개의 밑줄 위에 한 분 또는 두 분씩의 이름을 적고, 맨 밑에는 '지요하 막시모의 모든 조상들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는다. 또 하나의 봉투에는 외가 쪽 영혼들의 이름을 적고, 맨 밑에 '최오채 안나의 모든 조상들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는다. 다른 또 하나의 봉투에는 내 처가 쪽 영혼들의 이름을 적고 맨 아래에 '구갑회 글라라의 모든 조상들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는다.

봉투 하나에 3만 원씩을 넣는데, 처가 쪽 3만 원은 내 단독 부담이지만, 친가와 외가 쪽 합 6만 원은 3형제가 2만 원씩 분담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모든 위령미사와 축복미사 봉헌예물을 일반 경조사 부조금과 비슷하게 3만 원씩을 넣어 왔는데, 요즘은 내가 사는 시골에서도 경조사 부조금이 대개 5만 원 수준이어서 미사예물도 5만 원은 넣어야 하지 않나 생각 중이나, 매년 챙겨야 하는 미사봉헌도 꽤 많고 내 경제 형편도 넉넉지 않은 편이어서 아직은 계속 3만 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 벌써 6년 전인가 / 2003년 7월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천수만 쉼터를 찾았다. 당시 고1이던 딸아이가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쉽다. 내 삶을 취재하러 내려오신 천주교계 월간지 <생활성서>의 기자 수녀님이 찍어 주셨다.  
ⓒ 지요하  천수만 쉼터

그런데 해마다 명절 합동위령미사 예물봉투에 근래 세상 떠난 영혼들의 이름을 적는 일에서 흥미로운 변화도 느끼게 된다.

외가 쪽 예물봉투에 적히는 이름들은 매번 고정적이다. 세례명이 없는 외조부와 세례명이 있는 외조모, 역시 세례명이 없는 외삼촌 두 분과 이모 한 분의 이름만 적으면 된다. 몇 년 이 지나도록 추가되는 이름이 없다.

처가 쪽 예물봉투에도 여러 이름이 적히는데, 세례명이 적히는 경우는 내 장모님 한 분뿐이다. 오랜 세월 개신교 신자로 살아오신 장모님의 임종시기에 천주교의 세례명을 붙여 드릴 수 있었다. 그것은 내 아내의 강한 의지의 결과였다. 친정어머니 사후에 연미사를 지내드릴 때 속명과 함께 세례명이 불려지기를 아내는 소망했다. 그리하여 부부 함께 장모님께 권유를 드리니 수긍을 하셔서, 일찍이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으셨으므로 다시 세례를 드릴 필요는 없지만, 내가 다시 한 번 병상의 장모님 이마에 물을 부으면서 '요셉피나'라는 세레명을 붙여 드렸다.

장모님 외로는 처가 쪽 영혼들의 이름은 모두 속명뿐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이름이 추가되었다. 2003년 장모님 별세 이후 처조모와 큰처남의 댁이 차례로 세상을 하직한 까닭이다. 장모님과 마찬가지로 큰처남의 댁 역시, 그리고 아내와 어렸을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는 팔촌 남동생도 개신교 신자였지만,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고 미사를 지내주는 것은 우리 부부 몫이다.

그런데 내 친가 쪽 영혼들의 이름을 적는 일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특기할만한 변화가 생겼다. 한동안은 적어야 할 이름이 많아서 곤란을 느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둘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그리고 당질까지 챙겨야 했다. 그러다가 사촌 작은 형님 내외분이 천주교 신자가 되고, 서울 숙부님 쪽 사촌 동생들도 천주교 신자가 된 덕에 자연 백부와 백모, 숙부와 숙모를 위한 위령미사는 직계 자손들의 몫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내 친가 쪽 영혼들의 이름 쓸 자리가 넉넉해짐에 따라 예물봉투의 빈자리에 나와 혈연적으로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 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넣기도 했다. 군대에서 의문사한 강기훈 하사, 실험실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 조정훈 박사, 그 외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거나 납치되어 타살된 슬픈 영혼들 등이었다.

그러다가 올 추석에는 다른 두 사람의 이름을 새로 적어 넣게 되었다. 내 선친의 함자(지동환 안셀모) 아래에 김대중 토마스 모어와 노무현 유스토의 이름을 차례로 적고, 그 밑에 2005년 세상을 뜬 가운데 제수씨와 1994 겨우 네 살을 먹고 할머니 칠순 날 잔치를 하던 야외 음식점 분수 연못에 빠져 죽은 내 조카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맨 아랫줄에는 '용산참사로 숨진 영혼들'이라는 말을 적고, 그 아래 공간에 예년과 마찬가지로 '지요하의 모든 조상들을 위하여'라는 말을 적은 것이다.


▲ 태안 성당 / 매년 두 번의 명절 때마다 내가 모든 조상님들과 교감하고, 수많은 영혼들과 통공(通功)의 인연을 맺고 있는 태안성당 모습이다. 2007년 11월 4일, 추수감사미사 장면이다.  
ⓒ 지요하  위령미사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가톨릭 신자로서 세상 뜨는 날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왔으므로 위령미사를 봉헌해 줄 사람들이 많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경우는 그의 영혼을 챙겨 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그 두 분의 영혼을 많이 생각하며 살겠지만 특히 노무현 유스토의 영혼에 좀더 신경을 쓰게 될 것 같다.

해마다 두 번 명절 때만이라도 세 갈래의 모든 조상들을 생각하며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일에서 각별한 기쁨을 얻는다. 또 근래에 세상을 하직한 친인척들을 기억하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나와는 과거 아무 연관이 '없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미사예물봉투에 적은 다음 미사를 지내는 일에서 큰 행복감을 얻는다.

그분들은 모두 하나같이 오늘을 사는 나로 하여금 선업(善業)을 쌓게 해주시는 분들이다. 그들을 위해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는 일은 곧 내 영혼 길을 닦는 일이다. 내가 오늘 그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그들과 내 영혼을 두루 비추어주는 '영원의 빛'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인 것이다.          

<2>

지난 27일(주일) 저녁 성당에 가서 세 개의 '한가위합동위령미사' 예물봉투를 사무장에게 건네 주면서 별도의 개인 위령미사 예물봉투도 하나 함께 맡겼다. 28일(월) 아침 6시 미사를 위령미사로 봉헌하기 위한 예물이었다.

그것은 아내가 자신의 용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아내는 며칠 전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 난에서 한 기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정현순 기자가 어느 친구 집 사연을 소개한 글이었다. 대학생 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더없이 기뻤다. 아들이 대견스럽게 보였고, 부모도 함께 떳떳해지는 마음이었다.

아들은 대학 복학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하려는 뜻일 터였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했다. 그러다가 안전 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고층에서 목재를 운반하다가 그만 실족을 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기사를 읽은 아내는 몹시 가슴아파했다. "스물 세 살 청년이…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대학 복학을 준비하면서 용돈이라도 번다고…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그만…!" 끊어지는 말로 그 사연을 내게 전하며 아내는 울먹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건 흔한 일이야. 그까짓 일 가지고 뭘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도 쉬이 한숨짓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아내를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또다시 '부부일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이번에도 아내의 슬픔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군에 갈 대학생 아들을 둔 부모 처지에서, 무사히 군 복무까지 마친 대학생 아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고 깊이 슬퍼하면서, 한숨을 쉬면서 이름 모를 그 젊은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런데 그렇게 잠시 기도만을 했을 뿐 나는 미사봉헌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아내는 예물봉투를 마련하여 내게 맡긴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부끄러워지는 마음이기도 했다.

아내가 내 컴퓨터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놓은 미사예물 봉투에는 흥미로운(?) 표현이 있었다. 영혼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 자리에는 "지난 8월에 세상을 하직한 이름 모를 23세 청년"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고, '하실 말씀' 난에는 "하느님, 군 제대 후 대학 복학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층 건물 공사 현장에서 실족하여 숨진 청년을 당신 품에 받아주소서"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28일(월) 아침 6시 미사 때 미사를 주례하시는 보좌 신부님은 미사 지향을 알리면서 "지난 8월 숨진 이름 모를 청년"이라는 표현을 했고, '축성례' 후 간구 부분에서 위령기도를 하시는 주임 신부님도 같은 말을 했다.

보좌 신부님은 물론이고 사제 생활 20년이 지난 주임 신부님도 아마 그런 식으로, 이름 모르는 영혼을 위한 미사를 지내보기는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꽤 많은 '무연고' 영혼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며 살아왔지만, '이름 모를'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 개신교 목사님과 신자들을 위한 미사예물봉투 / 2007년 8월 15일 충남 태안성당의 '성모몽소승천대축일' 교중미사 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목숨을 잃은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영혼을 위한 '연미사'를 봉헌하면서, 아직 억류된 상태인 19명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생미사'도 함께 봉헌했다.  
ⓒ 지요하  아프가니스탄  

연초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할 때는 철거민 희생자 다섯 분의 이름과 김남훈 경사의 이름을 예물봉투에 적어서 미사봉헌을 했다. 또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피랍 사건 때 살해당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 영혼을 위한 미사를 봉헌할 때도 두 사람의 이름을 적을 수 있었다. 억류된 19명의 무사 생환을 비는 '생미사' 예물봉투에는 그 19명의 이름을 일일이 적지 못했지만….

몇 년 전 우리 고장에서 의붓아버지에 의해 두 유치원생 어린 자매가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두 어린이의 이름을 알아 가지고, 정확히 기록을 해서 위령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름을 알지 못한 상태로 '이름 모를'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기는 정말 이번이 처음이다. 무슨 대형 사고로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을 때 그들 모두를 위한 미사 봉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사를 지내면서 문득 오마이뉴스 정현순 시민기자에게 연락하여 그 청년의 이름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곧 혼자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터였다. 이름 모를 영혼을 위한 미사더라도, 대상이 확실한 이상 하느님의 은총이 그 영혼을 온전히 비추실 것이다.

아내는 아침 준비와 출근 준비 때문에 그 '이름 모를' 청년을 위한 미사에 참례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내 몫까지 정성을 다해 미사를 지내면서 그 청년의 부모도 많이 생각했다. 그 청년을 위한 위령미사로 말미암아 그 영혼에게로 비추어지는 하느님 신비의 빛이 그에게서 반사하여 그의 부모님 마음에도 어떤 빛이 안겨지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미사를 지내도록 나를 보살펴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이승에서는 아무 관련 없었던 그 영혼들과 하느님 안에서 영적인 관련을 맺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09.09.30 14:16 ㅣ최종 업데이트 09.09.30 14:16
합동위령미사, 축복미사, 연옥 영혼
출처 : '이름 모를 23세 청년'의 영혼을 위한 기도 - 오마이뉴스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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