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일 선교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Whoever welcomes a little child like this
in my name welcomes me.
(Mt.18.5)
제1독서 이사야서 66,10-14ㄷ
제2독서 코린토1서 7,25-35
며칠 전 조금 안 좋은 우편물을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범칙금 위반 통지서였지요. 나름대로 안전 운전을 한다고 했는데, 글쎄 속도위반을 했더군요. 사실 제 차에는 내비게이션이 부착 되어 있어서, 길 안내 해주는 것은 물론 속도를 위반할 때에는 속도를 줄이라는 안내도 해줍니다. 따라서 속도위반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속도위반을 한 제 차량이 그대로 찍혀서 통지서로 날라 온 것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게 속도위반을 했다는 사실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겠지요.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분명히 속도위반을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해야 할 텐데, 저는 그 경고 소리를 듣지 못했거든요. 이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로 사정은 계속 바뀌지요. 따라서 내비게이션의 자료 역시 최신 자료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저는 오랫동안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우리의 신앙 역시 이렇게 업그레이드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순히 처음에 ‘영세 받으면 그만이다.’ 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안일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활로 인해서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물론, 어렵고 힘든 이 세상을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기종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은 컴퓨터에 연결해야만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제 몸에 연결한다고 해서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며, 전기 콘센트에 꽂는다고 해서 업그레이드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컴퓨터에만 연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의 업그레이드는 어디에서 연결해야 할까요? 당연히 주님께 연결해야만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즉,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연결한다고 해서 내 신앙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데레사 성녀께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신앙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주님과의 연결을 끊지 않으셨지요. 바로 어린이가 순수한 마음과 굳은 믿음으로 부모에게 철저하게 의지하는 것처럼, 성녀께서는 철저하게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녀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연결되어 있는 곳임을 기억하면서, 이 세상의 것보다 주님께 관심을 갖고 주님께 연결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될 수 있습니다.
머리를 너무 높이 들지 말아라. 모든 입구는 항상 낮은 법이기 때문이다.(영국 격언)
커피 같은 사람이 돼라(루화난, ‘인생의 레몬차’ 중에서)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며 딸이 아버지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리사인 아버지는 말없이 딸을 주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세 개의 솥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았다. 솥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세 개의 솥에 각각 당근과 계란 그리고 곱게 갈아 놓은 커피를 넣었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아버지는 불을 끄더니 당근과 계란을 각각 그릇에 담고, 커피는 잔에 부었다. 그러고는 딸에게 가까이 다가와 당근을 만져 보라고 했다. 처음 솥에 넣을 때와는 달리 잘 익어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또 계란을 깨 보라고 했다. 계란 껍질을 벗겨 보니 역시 속이 단단히 잘 익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당근과 계란, 커피는 모두 똑같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다르게 나타났지. 넌 어느 쪽인지 생각해 봐라.”
아버지는 묵묵히 생각에 잠긴 딸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본래 강했지만 고통이 닥치자 스스로 몸을 움츠리고 아주 약해져 버리는 당근이냐? 아니면 본래는 연약하고 불안했지만 시련을 겪고 난 뒤 더욱 강인해 지는 계란이냐?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뜨거운 물을 변화시키고 좋은 향기를 내는 커피냐? 네가 커피가 될 수 있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현명해지고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며, 주변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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