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께 대한 전적인 봉헌
루이 마리 드 몽포르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마귀들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영혼들을 멸망시킬 시간이 없음을 알아, 그들의 노력을 나날이 새롭게 할 것이다." 성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는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는 마귀와 그의 병졸들에게 무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특히 오늘날 그러하다."
우리는 성인의 말을 믿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마귀가 나날이 그의 노력을 새롭게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복되신 동정녀의 여러 발현과 그 외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낸 여러 가지 사실을 생각할 때 복되신 동정녀께서 마귀를 대적하는 당신의 운동을 강화하고 계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루이 마리 성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단지 하나의 원수를 맺어 주셨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화해할 수 없는 원수이며 최후의 날까지 지속될 원수다. 그것은 당신의 소중한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마귀 사이의 원수이며, 복되신 동정녀의 자식 및 노예들과 루치페르의 자식 및 도구들과의 원수다."
이 전면 전쟁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어느 한편에 가담해야 한다. 중립이나 미지근한 가담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루치페르의 자식이며 도구가 아니라", "복되신 동정녀의 자식이며 노예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루이 마리 성인은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전적인 봉헌을 주창한다.
복되신 어머니께서는 여러 차례의 발현을 통해 아래의 세가지 실천을 요청하셨다. 즉 첫째 기도, 특히 묵주기도, 둘째 희생, 셋째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
그것들은 마리아의 평화 계획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 세가지를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할 것이며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 마리 성인은 마리아께 대한 전적인 봉헌만이 유일한 구원 방법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적인 봉헌이야말로 하느님께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 가장 완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루이 마리 성인은 이 봉헌을 "성세 성사의 서약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일컬었다. 우리는 성세 받을 때 마귀와 그의 모든 행실을 저버리고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친다. 우리가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를 예수께 봉헌할 때, 우리는 성세 때의 맹세를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새롭게 하는 셈이 된다. 우리가 마리아께 완전히 봉헌을 할 때, 우리는 아래의 것을 바친다.
1.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마리아께 바친다. 우리의 눈, 우리의 혀, 우리의 손과 발, 그리고 우리 육신의 모든 부분은 천상의 여주인을 영광되게 하는 데 바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영웅적 행위는 물론 일상 생활의 조그만 일까지 모두 바쳐야 한다.
2.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의 영혼을 그의 모든 기능과 더불어 바친다. 영혼의 기능이라 하면 명오와 자유 의지 등을 말한다. 우리는 이 모든 기능을 마리아께 대한 봉사를 위해 동원하겠다고 약속한다.
3. 우리는 마리아께 세속적인 사물을 바친다. 그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그분의 것이며, 우리는 일시적인 보관의 책임만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4.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의 내적 및 영신적인 재물을 바친다. 영적인 재물이라 함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공로, 덕행, 선행 들을 일컫는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 재산을 봉헌한다 함은 우리의 기도와 자선, 우리의 고행과 보속에 대한 처분권을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바침을 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마리아께서 처분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성모님은 그것들을 가장 적합한 곳, 즉 하느님의 영광을 현양하기 위한 데에 쓰신다. 무엇이 하느님을 현양하는 것이냐 하는 것을 가장 완전히 하는 사람은 성모님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에 대한 주인이 아니다. 마리아께서 그것을 연옥 영혼을 위하여, 혹은 죄인의 회두를 위하여, 또는 기타 다른 목적을 위하여 처분하신다.
그러한 희생은 수도 공동체에서조차 요구하지 않는 고귀한 희생이다. 수도자들은 청빈, 정결, 순명만을 서약하지 그들의 기도와 그들의 선행에 대한 가치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리아께 전적인 봉헌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기도의 지향을 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 지향을 가지고 기도할 때일지라도, 마리아께서 그 기도를 다른 목적으로 쓰실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전적인 봉헌 행위를 한 후에는 그 봉헌 한 뜻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의 전적인 봉헌을 계속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주 그것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갈 때, 점심 식사를 하고서, 자기 전에, 그리고 특히 유혹을 받을 때 우리의 봉헌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루이 마리 성인은 마리아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그리고 그 때엔 사람들이 마리아 안에서 자기를 잊을 것이라고,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영광되게 함에 있어 살아 있는 마리아들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행복스런 시대, 그 마리아의 시대는 언제 올까? 그것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이 신심을 사람들이 알고 이행하는 때에야 비로소 올 것이다."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라"
"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쳐라." 성모님은 파티마의 세 어린이에게 말씀하셨다.
파티마의 성모님이 가장 자주 요청하신 일 중의 하나도 묵주의 기도다. 성모님은 여섯 번 발현 동안 단 한 번도 묵주의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은 때가 없었다. 마지막 발현 날 성모님은 "나는 로사리오의 부인"이라고 스스로 일컬으셨다.
1858년 루르드에서 성모님은 묵주를 들고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베르나데트가 묵주의 기도를 드릴 때 당신도 묵주알을 같이 굴리셨다.
1875년에 시작된 폼페이의 성모께 대한 신심도 주로 로사리오의 여왕께 바치는 신심이었다.
1844년 성모님은 나폴리의 포르투나 아글렐리에게 "거룩한 로사리오의 여왕"이란 칭호를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케이프 드 라 마들렌에서 바치는 신심도 로사리오의 여왕께 대한 것이다.
묵주가 이 세상에 대한 성모님의 계획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은 이미 세계의 역사에 큰 역할들을 했다.
교황 비오11세는 1937년 묵주에 관한 회칙을 발표했는데, 그는 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 무서운 알비겐 이단을 몰아내신 거룩한 동정녀께서는 우리의 간청에 감명되시어 오늘의 오류들, 특히 공산주의의 오류들도 없애실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우리 모두가 합당한 의탁과 커다란 신앙과 열렬한 경건을 가지고 복되신 어머니께 간청한다면, 그는 그의 하느님인 아드님께 기도하여, 현재의 폭풍우의 거친 물결들을 잠잠케 하실 것이며, 크리스찬의 이 적대 세력을 기도 속에 빛나는 왕관으로 덮어 버리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교황은 가정 로사리오를 권장했다. 교황 비오 9세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여러분이 마음의 평화, 가정의 평화, 국가의 평화를 원한다면, 매일 저녁 모여 묵주의 기도를 통경하십시오."
교황 비오 11세는 가정 로사리오를 "아름답고 경하할 풍속"이라고 불렀다.
교황 비오 12세는 새로 결혼한 부부들에게 묵주 통경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성공적인 가정 생활을 보장받을 것입니다."
또 가정로사리오의 사도로 불리운 페이튼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들어 하루 24시간 중 단 10분 동안 성모님께 가정 로사리오를 바치기만 한다면, 그 가정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평화롭고 기도로 가득찬 장소, 가정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대로 소천국이 될 것이다."
"죄인들을 위해 너희 자신을 희생하여라"
교황 비오 9세는 라살레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그 비밀을 알고 싶습니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보속하지 않으면 여러분 모두가 멸망하리라는 것입니다."
루르드에서 베르나데트는 "참회하라! 참회하라!" 는 성모님의 호소를 반복했다.
파티마에서 성모님은 어린이들이게 이렇게 물으셨다. "너희는 너희를 하느님께 바쳐 하느님이 너희에게 보내실 모든 괴로움을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리는 죄와 죄인의 회두를 위한 보속으로 참아 받겠느냐?" 루치아가 그러겠다고 대답하자 성모님은 "그러면 너희는 많은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너희를 도와 지탱하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파티마 성모님의 아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책임을 지우셨다.
"기도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 그리고 죄인들을 위해 희생하여라. 왜냐하면 많은 영혼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옥에 가기 때문이다."
1925년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은 수녀원에 있는 루치아에게 발현하여,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보속 행위를 하라고 요청하셨다.
1932년 성모님은 벨기에의 보랭에 발현하여 "너희 자신을 내게 희생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희생을 바쳐야 하나?
파티마의 세 어린이는 성모님의 발현 전년에 그들에게 발현한 천사에게 위의 질문을 했다. 천사는 어린이들이게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고 희생하라" 고만 말했다.
아홉 살 난 루치아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희생을 바쳐야 합니까?"하고 재차 물었다.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는 무엇이나 희생할 수 있다.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리는 죄을 위하여 희생을 바치며, 죄인들의 회두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라. 이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너희 조국에 평화를 끌어들이도록 노력하여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께서 너희에게 보내시는 괴로움을 겸손된 마음으로 참아 받도록 하여라."
1942년 루치아는 이렇게 썼다.
"착하신 주께서 지금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보속은 당신의 법을 준수하여 의로운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요청하시는 뜻은 많은 사람들이 '보속'하면 커다란 고행을 연상하여 자기들에게는 그런 힘과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여 상심한 나머지 미지근함과 죄의 생활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 한밤중 나는 윗사람들의 승낙을 받고 수녀원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이 희생이란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것과 나의 법을 준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 찾고 요청하는 희생이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괴로움을 당하게 마련이다. 우리만이 당하는 가외의 일, 우리가 받는 모욕, 뜻대로 되지 않는 계획, 사랑하는 이의 상실, 혹심한 병고, 경제적인 어려움, 이 모든 괴로움을 죄에 대한 보속과 죄인들의 회두를 위해 바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희생들을 바쳐야 하나? 우리는 모든 영역에 걸쳐 그것을 바칠 수 있다. 매일 매일의 행위, 괴로움, 자발적인 자기 부정 등 얼마든지 있다. 여기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본다.
1.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미사에 간다
2. 우리가 하기 싫어 하는 일을 한다
3. 우리를 모욕한 사람에게 친절히 한다.
4. 짜증이 나더라도 참고 유쾌하게 가사와 직장에 종사한다.
5. 우리가 받는 육체적 아픔을 조용히 인내한다.
6. 타인을 돕기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한다.
7. 대단히 불편한 경우에도 우리의 종교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다.
8. 우리가 사고 싶은 물건을 포기하고 그 돈을 자선 사업에 바친다.
이상의 것들은 희생에 대한 성모님의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이다. 착한 지향만 있다면 그 외에도 우리가 성모님의 원의를 수행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이 세상을 그리스도께 돌아가게 하는 데, 또 이 세상을 평화의 길에 올려 놓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
성모님은 1917년 루치아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내가 알려지고 사랑받게 하는 데 너를 이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이 세상에 나의 하자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이룩하기를 원하신다."
마리아는 칠고(七苦)의 성모이며 무염 시태이며 하느님의 어머니, 성령의 배필이며, 모든 사람의 어머니며 모든 은총의 중재자시다.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 속에는 이 모든 칭호가 배합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신심이 널리 주목을 받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이 신심의 기원은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은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과 거의 흡사하다. 어떻게 말하면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은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의 길을 예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신 것과 같은 이치다.
마리아의 하지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은 극소수의 특별한 영혼을 제외하고는 17세기 중엽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641년, 성 존 에우데스는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께 대한 신심을 강론하기 시작했다. 1638년, 그는 '마리아의 지극히 순결한 성심과 거룩한 이름께 대한 신심'을 발간했다. 1680년, 그는 죽기 직전에 '하느님의 어머니의 사랑하올 성심'을 발간했다. 교황 비오 11세는 존 에우데스를 성인품에 올리는 식전에서, 그를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성심의 사도라고 불렀다.
1830년, 성모님은 카트린 라부레 성녀에게 발현하여 기적의 메달을 만들 것을 지시함으로써,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을 크게 붇돋우셨다. 우리가 이미 읽은 바와같이 이 메달의 한쪽에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나란히 그려져 있다. 카트린 성녀는 그 두 성심 위에 무슨 말을 새겨 넣을까 하고 성모님께 여쭈어 보았다. 성모님은 두 성심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필요 없다고 대답하셨다.
1840년, 성모님은 블랑지의 비스케뷔뤼 수녀에게 녹색의 성의를 주셨다. 녹색의 성의는 하자 없으신 성심의 표지라고도 불린다.
1917년, 성모님은 루치아에게 지상에 머물러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신심을 확립하는 데 조력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파티마의 세 어린이는 가시로 둘러싸인 심장이 성모님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것이 죄의 가시로 찔린 마리아의 성심이며, 보속을 원하시는 마리아의 성심임을 깨달았다. 루치아가 수녀원에 들어간 후, 성모님은 그녀에게 나타나 당신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대한 배상으로 첫 토요일을 다섯 번 지킬 것을 요청하셨다. 성모님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 "죽을 때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모님은 수녀원의 루치아에게 다시 발현하여 러시아를 당신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세계를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바치면서 러시아를 특별히 지적했다. 그 다음해 그는 8월 22일을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 축일로 제정했다. 교황은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 우리가 만일 마리아의 원의를 수행하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그분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신비체 속에 보다 긴밀히 일치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또한 우리 본당, 우리 교구, 우리 나라를 바쳐야 하며, 세계를 바친 교황 성하의 봉헌에 우리 자신을 결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모님은 우리의 여왕이시기 때문이다.
세계가 성모 마리아를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로 하는 오늘날, 우리는 루치아에게 한 히야친따의 말을 숙고해 보자.
"언니 우리 주께서는 모든 은총을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과,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께 그들의 청을 드려야 한다는 것과, 예수 성심은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과 동시에 존경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말해 주어요. 하느님은 평화를 성모님의 손에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께 평화를 구해야 된다고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요. 오, 만일 내가 나의 가슴속에 훨훨 타올라 나로 하여금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을 그토록 사랑하도록 만드는 이 불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박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리아는 우리가 당신의 사도가 되기를 원하신다.
교황 비오 12세는 언젠가 오늘날의 인류는 그리스도 역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 최대의 위기를 가져오게 한 요인들은 잡다할 것이다. 그러한 요인들은 교회 안팎으로부터 생기는 것들이다.
교회 밖으로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존재와 내세를 부인한다. 이 불길한 사상은 비교적 근래의 일로서, 초기 이단이나 프로테스탄트 이탈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최소한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은 고수했었다. 그들은 비록 오류 속에서 헤맬망정 종교적이었으며 때로는 거의 광적인 열성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완전히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부채질을 하는 것은 조직적인 무신론, 즉 저 공산주의의 발로로서, 그들은 세계를 그들의 오류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단호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교회 자체내에서도 조건은 그리 좋지 못하다. 통계 숫자로 본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5억 이상이나 된다. 세계 전체 인구가 30억이니 5억이란 숫자는 사실 엄청난 비율이요, 그만한 우리 신자들의 수를 고려할 때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환상이다. 많은 신자들은 이미 크리스찬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세속주의에 감염되어 있다. 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의 우정, 그들의 레크레이션에 있어 종교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세계의 사조에 휩쓸리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회합에서 발언권을 얻어 그리스도교회의 영원한 표준들을 선언하기를 꺼려 한다.
이러한 교회에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켜 이를 최후의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새로운 추진력이 필요하며, 그 추진력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공급될 수 있다. 사실 성모님은 현재 그 추진력을 공곱하고 계시다. 4백여 년 전 프로테스탄트 이탈 당시 그들에게 그렇게 배척을 당하신 성모님은 오늘날 다시 귀환하고 계시다는 징조는 여러모로 명백하다.
과거의 1세기 반은, 이미 우리가 읽은 바와 같이 성모님의 무수한 발현들로 점철되어 있다. 기적의 메달, 녹색 성의, 라살레트, 루르드, 펠부아생, 퐁트맹, 노크, 파티마, 보랭, 바뇌, 그 외 다른 발현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기도의 합장을 하게 되었다.
성모님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도움을 요청하고 계시다. 성모님의 사도로서, 우리는 이 세상의 근본적인 화근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나 세속주의나 국제적 분쟁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들은 인간성을 좀먹게 한 무서운 병의 드러난 징표다. 그 병이란 죄다. 밖에 드러난 징표들을 공격하는 것은 쓸데없다. 우리는 그 병균을 내몰아야 한다. 사도적 크리스찬은 자기 자신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병균을 보유하고 있는 한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파티마에서 현대 세계에 보내는 당신의 메시지를 이렇게 종합하셨다.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 주님의 마음을 상해 드리지 말아야 하며 또 자기들의 죄에 대하여 용서를 청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미 크게 마음을 상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보존함과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동료들을 맡기신 사람"이란 말의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좀더 그리스도께 접근시키는 일에 협력할 의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일을 가장 잘 수행하는 길은 알맞은 지도 아래 그런 목적을 위해 조직된 단체를 통하여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희생이 우리의 사도직의 본질적 부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교황이 되기 전 아직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로 있을 당시 비오 10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착한 사람들의 기도에 의해 다시 그리스도화하기만 헛되이 기다리려 한다.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긴 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하느님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인도와 일본은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만으로는 결코 회두하지 않았을 것이며, 사도들도 만일 그들이 영웅적이며 순교자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세상을 정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행위와 결합시키는 것을 필요하다."
오늘날 마리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기도를 행위와 결합시키기를 원하신다. 성모님은 우리가 당신의 메시지를 보다 널리 알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위한 위대한 십자군에 가담하기를 원하신다. 성모님은 사람들을 죄로부터 건져 내어 다시 당신의 아들께로 돌려보내는 일에 우리의 도움을 원하신다.
이 십자군에 가담함으로써, 마리아의 사도가 됨으로써 우리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승리를 재촉할 수 있다. 우리는 장차 다가올 위대한 시대, 즉 마리아의 시대에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