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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4일 야곱의 우물- 마르 10,2-26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4 조회수414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으냐?" 하고 되물으시니,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너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은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예수님게서는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여행을 하시는 도중에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마르 9,33)을 거쳐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지역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3,8 참조) 많은 사람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하시던대로 그들을 가르치십니다(10,1).

군중 가운데 이혼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바리사이 몇 명이 예수님게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느냐고 묻습니다(2절). 마르코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그들의 의도가 단순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짚어줍니다. 그들은 어쩌면 '이 사람이 이혼에 관한 모세의 율법과 모순되는 답을 줄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율법에 위반된다고 손가락질하며 그분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지요.
바리사이들은 이혼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구약성경 신명 24,1-4에 따르면 남편이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이 허락되고, 남편들만 그 주도권을 갖고 있으며 이혼은 재혼할 권리를 함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제시한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신명 24,1)라는 말을 두고 해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라삐 샴마이는 아내가 부도덕한 죄를 범했을 때만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라삐 힐렐은 더 넓은 이혼 사유를 인정하며 남자들이 이혼할 수 있는 재량권을 확대해석햇습니다. 당시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이 논쟁의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되면 당신을 따르는 여러 계층의 군중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되물으십니다. "모세는 너희에게 어떠헥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마르 10,3) 이 질문은 바리사이들의 해석을 제쳐두고 그들로 하여금 구약성경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신명 24,1-4를 이혼 규정 근거로 요약해 대답합니다. 남편이 증인들 앞에서 이혼증서를 써서 그것을 아내에게 줌으로써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은 모세가 그러한 규정을 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이혼을 찬성해서가 아니라 결혼의 본듯이 지켜지지 않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이 남자들의 소유물처럼 아무 때나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였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말라키도 이스라엘 남자들의 혼인관계에 대한 불성실을 다음과 같이 질타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제 목숨을 소중히 여겨 젊은 시절의 아내를 배신하지 마라.
정녕 나는 아내를 내쫓는 것을 싫어한다."(2,15) 그래서 모세는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라는 이혼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혼을 인정했으나 그것을 제도화한다기보다는 그 정당성을 최소화한 것이지요.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본래 취지를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성경 말씀(창세 1,27;2,24)에 의거해 당시 통용된 이혼 관습을 비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어 서로 돕도록 하셨습니다(창세 2,18참조).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처럼 혼인은 쉽게 파기할 수 있는 일시적 계약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르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상호 신뢰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혼을 부정하는 데 그 강조점이 있다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부부가 한 인격체임을 깨닫기를 촉구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홍포를 비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결혼의 신성함과 존엄성에 그분의 강조점이 있는 것이지요.

바리사이들과의 논쟁과 가르침에 뒤이어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들어갔을 때, 제자들이 이혼 문제에 대해 다시 묻습니다(마르 10,10). 그러자 예수님은 이번에는 부부 사이의 동등한 상호 존중을 강조하면서 혼인 생활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을 주십니다. 남자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 되듯이,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해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인지 병행 구절인 마태오복음은 여기에서 한 가지 예외를 제시합니다. 곧 "불륜을 저지른 경우는 제외"(5,32)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마르코복음의 예외 없는 원칙이나 마태오복음의 완화된 표현에서 그 핵심은, 이혼이나 재혼에 대한 단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혼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아내에게 신실해야 하듯이 아내도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신실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혼인 관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일방적이거나 불평등해서는 안 되고,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인간을 만드실 때 서로 돕도록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한 몸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뜻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바리사이들과 논쟁이 있은 뒤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려와 예수님께 쓰다듬어 달라고 합니다. 그분의 축복을 받고 싶어서지요.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는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고, 제자들은 어린이들로 인해 예수님의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습니다. 제자들의 그러한 모습에 화가 나신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시켜,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앞에서 예수님을 시험에 들게 하려고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바리사이들과 어린이들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그분이 한번 만져주시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과 신뢰를 지닌 사람들과, 그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벼르고 그분 앞에 온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주님, 당신 자년들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차별 없이 신뢰에 기초하여 서로의 가치를 잊지 말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 '보시기에 좋다.'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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