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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6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6 조회수1,066 추천수18 반대(0) 신고
 

10월 6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 루카 10,38-42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손님접대로 분주한 언니 마르타(활동가)보다 예수님 말씀에 더 관심이 많은 마리아(관상가)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관상한다는 것, 무엇이겠습니까?


   관상이란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에 내 존재 전체를 맡기는 일입니다. 관상이란 내 영혼의 닻을 가장 안전한 포구인 예수님께로 내려놓는 일입니다. 관상이란 내 안에 숨겨져 있는 가장 값진 보물인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삶 전체를 관상기도에 매진하기 위해 높고 높은 봉쇄수도원 담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은둔은 단순한 은둔이 아닙니다. 그들이 은둔은 칩거나 고립, 사회와의 단절을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자신을 찾으려면 네 자신을 모두 버려라-는 하느님의 음성에 따라 스스로를 가둔 은둔, 세상과의 더욱 충만한 친교 속에 살기 위한 은둔입니다.


   그들은 보다 관상에 충실하기 위해 삶을 극도로 단순화시킵니다. 끊임없는 가지치기로 단순화된 삶을 또 다시 단순화시킵니다. 결국 그들 앞에 남는 것은 침묵과 고요와 하느님, 그리고 나입니다.


   이런 그들 앞에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 한 가지만이 나를 충만케 합니다. 그 한 가지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한 가지만이 나를 하느님의 모상대로 재창조합니다. 결국 그 한 가지만이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들은 참 좋은 몫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관상은 결코 봉쇄수도자들만의 전유물이 절대로 아니지요. 관상생활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물론 제대로 된 관상기도를 위해서는 분위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대 침묵 속에 관상기도는 더욱 효과를 발휘하겠지요.


   그러나 관상기도를 위해 환경이 꼭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란스런 시장 한 가운데서도, 분주한 직장생활 속에서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도 관상기도는 가능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장소를 불문하고 하느님 말씀에 대해 진지하게 몰입할 때, 어디에 서 있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때,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하고 기뻐할 때 우리는 진정 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끄러운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가면서 자주 관상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삐걱거리는 세상 한 가운데를 살아가면서도 침묵과 고요를 사랑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내가 고요함 가운데 살도록, 내가 관상생활에 맛들이도록 부름 받은 것은 어쩌면 다른 이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더욱 분명하게 식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관상과 친교는 맞물려 돌아가는 두 개의 톱니바퀴와 같습니다. 관상생활을 잘 하면 할수록 그 결과 이웃들과의 친교가 원활합니다. 이웃과의 친교가 원활한 사람은 관상기도에 더욱 충실합니다.


   관상생활에 충실한 사람들은 나와 남의 경계를 쉽게 허물어트립니다. 관상생활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있어 이웃들의 고통이 곧 내 고통이요, 이웃들의 멍에가 곧 내 멍에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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