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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5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6 조회수481 추천수3 반대(0) 신고

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상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였으면 손님접대에 차질이 없도록 합심하여 준비를 하여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언니인 마르타는 예수님의 일행을 접대하기 위해서 눈코 틀 사이도 없이 분주함에도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 있으므로 언니 마르타가 보기에는 얌체도 그런 얌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여 마르타는 이런 동생을 타일러주시기를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르타의 부탁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이 실제 상황이라면 마르타의 청은 부당한 청이 아니며 예수님께서도 마르타가 부탁하기 전에 마리아를 타일러야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리아가 옳은 선택을 하였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므로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복음 묵상은 이처럼 우리의 생각과 다른 점이 묵상의 소재를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의 상식과 같은 말씀이라면 묵상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이 필수입니다. 예전의 어느 광고 문구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하였으나 실제 우리 삶에 있어서는 순간이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선택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복음이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오늘 복음과 같은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언니를 도와서 예수님의 시중을 들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들어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였습니다. 이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며 우리의 삶 자체가 선택이므로 우리 누구에게나 이런 선택은 매 순간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듣기로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로 선택한 것은 곧 진리를 선택한 것이므로 최상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하셨습니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하였듯이 우리 삶도 가정이 없으며, 살아오면서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바로 오늘 현재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옳은 선택을 많이 한 사람은 그만큼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며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한 사람은 그만큼 후회가 많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인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바른 선택을 한다면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비좁고 험난한 길이기에 그 어떤 유혹도 물리칠 수 있는 굳건한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어떠한 경우에도 변치 않는 자신만의 굳건한 신념입니다. 그러한 굳건한 신념을 갖기 위해서는 그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진실하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인식을 통한 검증과정을 필히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변치 않는 올바른 신앙이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검증과정을 아주 벽안시하고 있으며 오직 '믿나니다'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나니다'는 달리표현하면 '묻지마'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묻지마'입니다. 내가 지지했던 정당이 아무리 부도덕한 짓을 하여도 무조건적인 지지인 '묻지마' 지지를 하고 있으며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모습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순명이므로 '묻지마' 입니다. 우리는 이런 '묻지마' 신자가 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서 매 순간순간마다 올바른 선택을 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묻지마' 신앙생활로 자신만이 결정해야 할 매순간순간에서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묻지마' 신앙생활로 과연 후회 없는 삶을 살아서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요? 이런 물음마저도 '묻지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묻지마'일 것입니다.

이런‘묻지마’신자들에게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바른 가르침을 알려줘서 매사를 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알려준다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지 않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러한‘묻지마’신자들을 규합하여 교회의 이익을 위한 이익단체로, 정치세력집단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으므로 듣기도 거북스러운 우리 기독교를 비하하는 용어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천주교는 천주교이고 기독교가 아니라는 이런 '묻지마' 신자도 있으므로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선택한 것처럼 우리도 매 순간순간의 선택에서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따르는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종교는 올바른 선택으로 우리의 삶이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데 있으며 하느님을 믿으면 하늘에서 복을 내려주고 죽어서 천당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 아님에도 현실은 이와 다르므로 어느 누구를 탓하기전에 복음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여 우리들 자신부터 먼저 깨어나야 교회도 쇄신되고 우리 사회도 쇄신되어 예수님이 그토록 바라셨던 그러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선택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을 위해서
매순간마다 올바른 선택으로 후회 없는 삶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올바른 선택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음에도
하느님께, 예수님께, 성모님께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잘못된 믿음만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저희들에게 자비는 이제 그만 베풀어 주시고
준엄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잘못된 믿음에서 깨어나도록 꾸짖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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