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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주 귀엽고 깜찍한 순교> - 김정식
작성자김수복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8 조회수1,049 추천수2 반대(0) 신고
 
아주 귀엽고 깜찍한 순교
[김정식 칼럼-세상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2009년 10월 05일 (월) 23:27:58 김정식 kimrogerio@hanmail.net
 

 

   

▲ 사진 - 고태환

 순교 하나.  

9월 12일은 놀토(노는 토요일)였다. 가을 햇살이 따갑게 비쳐드는 이른 아침에 아래층에서 한 바탕 소동이 일었다. 막내 이랑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고, 달래는 엄마와 나무라는 오빠 이삭의 음성이 뒤섞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용을 잘 듣고 정리해 보니 이렇다. 고딩 1년인 이랑에게 짝꿍이 문자를 날렸는데 ‘새벽 4시에 신종 플루에 걸린 것으로 확진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여서 안타깝고, 거의 매일 함께 지냈기에 자신도 감염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한마디씩 핀잔 섞인 말을 했다.

“확진이 아니라 스스로 확신한 게 아니겠니? 새벽 4시에 왠 진료?”
“너 지금 울음연기 연습하니? 플루에 걸렸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닌데 왠 난리야?”
“어쨌든 네가 지금 열이 없는 걸 보니 넌 감염 안 된 게 분명해.”
머리를 만지려는 아빠의 손을 피하며 이랑이가 울음 섞인 외마디를 내지른다.
“아빠. 나 만지지 마. 잠복기가 열흘이니 이미 감염되었을 수도 있는데 만지면 아빠도 감염되잖아. 걸렸더라도 나 혼자 죽고말거야.”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듯, 제 방 침대로 가서 이불을 둘러쓰고 스스로 격리되어 흐느끼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생각보다 웃음이 나는 것은 왜일까?  

   

▲ 사진 - 고태환

“아빠. 신종 플루 뻥이었대.”
까맣게 잊고 있는데 문자가 날아온 것은 그로부터 8시간 후였다. 세상에. 아직은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한낮에, 어린 것이 그 긴 시간 동안을 이불속에서 혼자 울면서 번민하였을 생각을 하니 이번에는 웃음보다 분노가 치솟았다.
“만우절도 아닌데 왠 뻥이야? 왜 그런 일로 장난을 하고 그런대? 그나저나 순교한 셈 쳐라. 9월은 순교성월이니라. 친구가 당한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도, 다른 가족에게 감염될까봐 스스로를 격리시켜 힘든 일을 혼자 겪어내려는 마음도, 나만 좋으면 그만인 이기심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는 순교적 삶에 다름 아니다.”

이래도 저래도 예쁘기만 한 막내에게 아빠가 건네는 위로의 말이지만, 아직 고딩인 이랑에게 순교란 너무 먼 얘기인 듯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싶게 해맑은 얼굴로 아빠가 부른 <9월 노래>를 듣고 있다. 한국에서는 순교성월이라는 9월을 내가 잠시 살았던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 사진 - 고태환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하기 좋은 구월은 깊어가고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지만

                      9월의 하늘과 나무들은 흘러간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한다.

                         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계절에 홀로 방안에 앉아

                                  찬란하게 빛나는 9월을 느끼며

                                        지난날을 그리워한다. 
                                 (샹송「Au coeur de septembre(9월 한 가운데)」내용요약)

 

 

 

   

▲ 사진 - 고태환

 

순교 두울.  

9월의 마지막 주일 오후, 대전에서 강의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전날 일정 때문에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수면이 부족한 채로 막히는 고속도로를 반은 졸면서 달리고 있었다. 연료부족을 알리는 계기판의 신호를 여러 번 들었기에 자꾸 감기는 눈을 부비면서 휴게소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휴게소에는 휘발유만 있었고 가스충전소는 없었다. 조느라고 주유소 안내표시판을 잘못 본 것이다.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서려는데 눈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러 종류의 차량 13대가 연속 추돌한 것이다. 바로 내가 졸면서 주행했던 차선이었는데 졸음운전 덕에 대열에서 빠진 셈이다. 아무 잘못을 안했어도, 모든 법규를 잘 지키며 운전을 완벽하게 잘했더라도, 저 행렬에 끼었더라면 결코 사고를 피할 수 없었으리라. 이틀 후에 대전 목원대에서 <헤세의 시와 노래>콘서트가 있었다. 나는 가수 서유석씨와 함께 헤세의 시로 노래를 만든 초청가수로 갔었는데, 그 행사를 준비해 왔던 독일어문학과 조교 두 사람이 그날의 사고로 입원중이었다. 그들이 아무런 잘못도 안했음은 물론이다. 단지 거기 있었다.

9월 한 달 동안에 세 번의 접촉사고를 당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고서 자다가 홍두깨 식으로 당한 일들이다. 골목길로 후진하여 나오면서 양쪽을 고루 살피지 못한 채, 어렵게 오르막을 올라가던 내 차를 들이받은 사람이나,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며 들어오는 차를 피하느라고 내 차를 들이받은 택시기사님은 그야말로 운이 없는 경우이다. 그러나 성당 마당에 세워둔 내 차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미숙으로 긁은 아주머니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 좁은 마당으로 차를 끌고 미사 하러 왔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밤이기도 했지만 나는 강의를 해야 하니 다음 날 아침으로 처리를 미룬 채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모든 책임을 다 지겠다고 했었지만, 다음 날 아침 통화를 해보니 딴청이다.

“차가 다니는 곳에 주차하셨으니, 따지고 보면 그 쪽도 다 잘한 것은 아니잖아요.”
“제가 잘못한 것은 따지지 마시고 자매님께서 잘못한 것만 생각하셔요. 가만히 세워둔 차를 받으셨잖아요. 어제 사과하신 내용대로라면 공간이 충분한데도 운전미숙으로 그러셨구요. 저는 그 본당에 초대된 강사이기에 주차관리원으로부터 안내를 받아 거기 세워둔 것이니, 혹시 제 차가 잘못 세워진 것이라면 그 성당 쪽에 따지셔요. 제게는 이미 약속하신 대로 차만 수리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죄송해요. 바로 송금해 드릴께요. 신부님.”

아니, 뭐라구? 전날 밤 잠깐 스치듯 만났었는데 나를 성직자로 잘못 알았나보다. 그 순간 성직자를 상대로 야무지게 잘잘못을 따질 줄도 아는 평신도가 장하게 여겨지는 것은 또 왜일까? 그래도 자고나서 심경이 달라진 얄미운 그녀에게 눈 딱 감고 송금하게 했다. 나 또한 자고나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 사진 - 고태환

25년 만에 만난 대자네 집이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기에 오며가며 들르면 긁힌 곳을 수리하거나 칠을 해서 깨끗하게 만들어 주곤 했다. 이 번 달에 세 번이나 수리를 했기에 계면쩍은 마음으로 담당 직원에게 말했다.

“대자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접촉사고가 자주 나지 않았었는데요. 매번 처리해 줄 곳이 생기니 왜 이렇게 자주 들이받히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요. 그저 이번 달에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데요. 아슬아슬한 사고 중에 몸이 다치지 않은 것도 행운이구요. 그런 사고들을 처리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러니 운이 좋은 셈이지요. 몸 상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어서요.”

   

▲ 사진 - 고태환

 그렇다. 멀쩡하게 주행 중인 내 차를 들이받은 택시기사께서 자꾸 거짓증언을 했다. 먼저 우기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기사님. 저는 운전을 점잖게 하기보다 좀 거칠게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순간에도 내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은 안하는 사람이예요. 그러니 두 번 다시 제가 2차선에서 오다가 차선을 변경했다는 말씀은 하지마세요. 억울한 얘기를 자꾸 들으니 화가 나려하고, 화가 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그 후로 기사님은 두 번 다시 그 말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진심이 상대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오해와 비겁이 판을 치고 남을 짓밟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진심이 통한다는 것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 사진 - 고태환

 가해자인 택시기사 외에 원인제공자가 있었는데, 스스로를 현역 군인이라고 밝혔다. 복무중인 현역군인(의무적인)은 ‘운전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휴가 나올 때 반드시 교육받는다. 그런데도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면 영창에 가게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휴가 나온 첫날 지방출장중인 아버지의 차를 끌고 나왔기에 보험처리도 안된다. 내가 그 사실을 안 직후부터 사고의 실제가해자인 택시기사에게 그런 내용을 말씀드리고 여러 차례 부탁을 했다. 우리가 다소 불편을 겪게 되더라도 아들 같은 젊은이의 입장을 생각해서 법적처리만은 하지 말자고. 조금 손해를 보게 되어 억울하더라도 몸이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자고.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기사님은 내 말을 받아들였고, 일은 내가 바랐던 대로 잘 처리되었다. 또 한 번 감동했다. 진심은 통한다는 사실에.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가면서 포기하지 않은 채 이 복잡한 삶을 살아낸다고 하는 것, 그러면서도 내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지 않는 것, 어려움 중에도 모르는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 우리의 원죄인 이기심이 이미 우상으로 등극한 이 시대에는 이런 작은 것조차 순교적 삶이 되지 않을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Au coeur de septembre(9월 한 가운데) 」- 노래 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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