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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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부님의 고백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8 조회수582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 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루카 11:15-26)
 
사람들은 보통 지옥을 뜨거운 불바다로 생각하지만 옛날의 아일랜드 사람들은 차가운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뜨겁든 차갑든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차가운 것은 기후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영적인 것이다. 샤를르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신부의 스승이었던 아베 후베린(Abbè Huvelin, 1839-1910) 신부가 말했다. “악마가 성녀 브리지타(St. Bridget)에게 나타났기에 성녀가 악마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오?”하고 묻자 악마는 ‘냉정함(Coldness itself)이오.’하고 답했습니다.” 악마는 어둠의 왕자이며 자기애(自己愛) 외에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악마의 이름은 뜨거운 것보다 찬 것이 어울린다.
 
오늘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심지어는 시험하려고 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신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어떤 사실을 알려고 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며 무지(無知)에서 달아나면 더 큰 무지에 빠지게 된다. 거짓 지식이나 얕은 지식은 단순히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무지로 이해를 가로 막는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는 말은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에서 나온다. 배우는 자세는 그러해야 한다. 우리들이 어린이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맑은 마음을 가지면 금새 배우게 된다. 그러나 잡다한 지식이나 이론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돈 속에 있게 되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게 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좋은 것을 보고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을 헐뜯는 것을 본다. 자신의 행동은 뒤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동만 비웃는 이른바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이다. 예수님을 해괴망측한 기적만 일으키는 베엘제불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후베린 신부가 말했다.
당신이 고통을 더 많이 당할수록 다른 영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무엇보다도 고통 당하는 영혼들은 책망과 수정을 강요당하기 보다 안도와 위로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루미의 <마드나위>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잘못을 말하지만 세속을 초월하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모른다.
나름대로의 지혜와 확신 때문에 여론이 갈리게 된다.
이 때부터 좌익(左翼)과 우익(右翼)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마음 속에 진리의 시금석을 간직하고 있는 신성한 사람이 아니면 좌익이 무엇인지 우익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두 의견 사이를 헤매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둥지로 날아간다.
지혜는 두 날개를 갖고 있지만 여론은 한 날개밖에 없다.
여론은 연약하며 한쪽으로 기울어져 비스듬히 날아간다. 날개가 하나뿐인 새는 금방 떨어져서 두 걸음 정도 퍼덕거리며 날아간다. 여론의 새는 그의 둥지에 갈 희망을 갖고 한 날개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날아간다.
여론의 새가 여론에서 벗어나서 지혜를 알게 되면 두 날개를 얻게 되어 여론과 지혜 사이를 오간다. 그 뒤로는 “비굴한 얼굴을 하지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바른 길을 곧 바로 날아 오른다. 그는 마치 가브리엘 천사가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표리부동하지 않고 헛소리를 하지 않듯이 두 날개로 힘차게 날아 오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그에게 “당신은 확고하게 신의 길을 가고 있소.”하고 말해도 더욱더 정진하지 않을뿐더러 고귀한 영혼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소. 당신은 미풍에도 흔들리는 풀 잎사귀지만 당신 자신을 바위라고 생각하고 있소.”하고 말해도 비난에 못 이겨 여론에 빠져들지도 않고 군중의 증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조금도 나쁜 생각에 빠지지 않고 원수의 비난에도 슬퍼하지 않는다.》
 
샤를르 드 푸코가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아베 후베린 신부에게 가서 고백성사를 하게 되었다. “아베 신부님, 저에게는 믿음이 없습니다. 저는 신부님께서 저를 지도해주십사 하고 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고해소에 계시던 아베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렇게 하고 나면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돌하게도 푸코는
“저는 그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의 고백을 들으려고 왔습니다.”하고 답했다.
푸코는 왜 믿어야 하는가? 신앙의 맛은 어떤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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