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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한 아이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 송성영
작성자김수복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8 조회수393 추천수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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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를 보면 눈물이 난다
부모에게 무엇이 진짜 공부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아이
 
2009년 08월 01일 (토) 22:57:02 송성영 sosuyong@hanmail.net
 

 

   
▲ 자신이 만든 조소를 들여다 보고 있는 송인상

"아빠 나 인상인데···"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어? 11시 밖에 안됐는데 벌써 수업 끝난겨?"
"응. 오늘 방학이라 일찍 끝났어."
"오늘부터 방학이라구?"
"응. 오늘이래." 

녀석은 다른 친구의 방학 얘기하듯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짜도 이틀 전에서야 알았던 인상이 녀석, '졸업이니 방학이니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호들갑 떨고 있는가' 그러는 것만 같습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녀석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선문답에 뭔 소린가 싶어 쩔쩔매는 얼치기 중이 되곤 합니다. 뒤통수를 된통 얻어맞은 기분을 추슬러 용건을 물었습니다.

 "근디, 왜 전화 했어? 얼른 오지 않고."
"친구들하고 PC방 갔다 올게."

 시골 촌놈, 도시 중학교로 진출해 한 한기 다니는 동안 두세 차례가 전부였던 PC방 출입이었기에 너무 오래 있지 말라 토를 달아 흔쾌히 허락 해줬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인상이네 학교 방학이라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오늘 인상이 방학이라는 거 알았어?"
"아니? 오늘 했대?"
"인상이가 말 안 했어? 오늘 한다고?"
"인상이도 확실히 모르고 있던데? 어? 이상하다. 오늘 인상이 녀석 미술대회 나간다고 했는데."
"짜식이 미술대회 나가는 것도 깜빡 한거 아녀? 얼른 최백규 한티 전화 해봐. PC방 같이 간다고 했으니께."

인상 녀석은 핸드폰이 없습니다. 녀석의 친구 최백규의 핸드폰을 통해 인상이와 통화를 하고 나서 아내가 그럽니다.

"인상이 녀석 오늘 방학한다는 거 몰랐나봐."
"어이구 자식, 미술대회는?"
"내일 이래. 오늘 미술 대회 나간다고 사복까지 챙겨 갔는데."

본래 말수가 없는 녀석이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그마저 줄었습니다. 녀석은 방학이 오늘이니 내일이니 호들갑 떨지 않습니다. 사춘기가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의 중학교 생활에 적응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친구들과 수다 떨기 좋아하는 형 인효보다 녀석의 주변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자신의 반뿐만 아니라 이반 저반 다른 반 아이들까지 친구로 사귀었다고 합니다.

녀석은 학업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날렵하게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말주변 머리가 좋아 친구들을 배꼽 잡게 해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 희한한 일입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소질을 보이는 게 있다면 만들기나 그림을 잘 그리고 촌놈들이 그렇듯이 겨우내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 건강체질입니다.

녀석의 친구 사귀기는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

"생판 모르는 그 많은 친구들을 어떻게 사귔냐?"
"그냥."
"그래두 뭔가 대화가 오고 갔을 거 아녀."
"그냥, 나 계룡초 나왔는디? 넌 어느 초 나왔냐? 그렇게 말하지 뭐."

녀석의 친구 사귀기 비결은 따로 없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 누군디 너 누구여' 식으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어른들처럼 이러저러한 조건 따위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녀석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것은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품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하지 않은 공부라 할지라도 엄마가 원하면 투정부리지 않고 따릅니다. 녀석의 형 인효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학원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손에 이끌려 어김없이 책상 앞에 코를 박아야 놓고 있어야만 합니다.

형은 늘 공부를 다 했는니 어쨌느니 엄마와 티격태격 하기 일쑤지만 녀석은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공부시간을 늘리면 늘리는 대로 줄이면 줄이는 대로 군말 없이 따릅니다. 형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있지만 학업 성적은 형보다도 한참 뒤떨어집니다. 그래도 크게 실망하거나 주눅 드는 법이 없습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 엄마에게 미안해할 따름 입니다. 

   
▲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제끼고 형, 송인효와 함께 집 옆 개울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송인상
엄마는 학업 성적이 좋지 않은 녀석이 걱정입니다. 지금의 성적으로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수 없을 것이라고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녀석은 엄마가 시키니까 그저 수학문제에 머리 싸매고 영어단어를 주절주절 읊조리고 과학과 사회 책을 펼쳐 놓고 있는 듯 보입니다. 아빠인 내가 봐도 헤깔리는 문제집을 딴엔 부지런히 풀어댑니다.

"엄마, 이제 다 풀었으니까 문제 내 봐봐."

늘 자신만만하게 나서곤 하지만 금방 풀었다는 문제를 제시해 보면 반도 채 알지 못합니다. 

"어휴 답답해, 수없이 반복해서 가르쳐 줬는데 아직도 그걸 몰라! 딴 생각만 하고 집중하지 않으니까 모르지!"

학원에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교과서를 익혀 자식들을 가르치고 있는 아내. 아내는 녀석을 가르치다가 가끔씩 복창 터져 합니다. 나는 성질 급한 아내에게 화내지 말라 훈수를 두다가 된통 역공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상이 녀석은 엄마의 화 기운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받아냅니다. 

"어? 이상하다 다 알았는데, 아, 알겠다 알겠어. 다시 풀어 볼게."

자신만만하게 다시 풀어 보지만 해답을 엉뚱하게 내놓는 녀석. 아직까지는 문제 풀이에 소질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녀석의 집중력은 우리 식구 중에 그 누구도 따라 잡지 못합니다. 단지 재미없는 영어 수학 따위의 문제집에 집중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뭔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기 시작 하면 밥 먹는 시간도 잊습니다. 녀석이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장난삼아 형광등 불을 꺼도 녀석은 계속해서 그 일에 손놓지 않을 정도입니다. 화도 내지 않습니다.

나는 속 터져 하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인상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갑니다.

"너 공부하다보면 딴 생각 나지?"
"응. 그림이나 만들기 같은 것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고, 자꾸 딴 생각이 나."
"아빠도 그랬어, 문제집 풀고 있다보면 자꾸만 딴 생각이 나더라구."
"아빠도 그랬어?"
"응, 그게 자연스러운 겨. 언젠가는 집중할 때가 있을 거니께, 공부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말고 니가 하고 싶은 거 혀, 알았지?"
"...그냥 공부 할래."

부지런히 가르치고 있는 엄마에게 미안했는지 녀석은 다시 책상 앞에 코를 박아 놓습니다. 이쯤 되면 아내는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합니다. 녀석에게 미안해합니다. 성질 급한 엄마의 구박을 군소리 없이 받아내고 있는 녀석을 통해 아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되돌아봅니다. 구박한 것을 후회합니다. 녀석에게 화를 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는 녀석을 구박하는 아내에게 무엇이 옳으니 그르니 부질없는 훈수를 두다가 오히려 아내의 화를 돋우곤 하지만 녀석은 말없이 엄마의 화를 가라앉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내가 녀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녀석이 아내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구박 받아 가면서도 군소리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착한 인상이. 그런 녀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덩어리가 솟아오릅니다. 눈물이 고입니다. 아내도 그런 표정입니다. 그렇게 녀석은 어리석은 우리 부부에게 무엇이 진정한 '공부'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가 어디 우리 인상이 뿐이겠습니까?

"다녀왔습니다!"

방학 기념으로 친구들과 함께 PC에 들려다오겠다던 인상이 녀석이 돌아왔습니다.

"어? 왜 벌써 왔어, 피씨방 간다며."
"갔다 왔어."
"너 오늘 방학인줄 몰랐지?"
"아니 알았어."
"오늘 미술 대회 나가는 줄 알고 사복 가져갔다며."
"미술대회는 몰랐는데 방학은 알았어. 아 참 맞다. 오늘 나 상 받았다."
"어떤 상?"
"저번 미술대회 나간 거."

지난 단오절 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에서 주최한 미술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는데 자랑도 감동도 없이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아마 미술대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그 소식을 오랫동안 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 대단 한데! 너 대상이 뭔지 알어?"
"알어."
"상장도 받었건네?"
"응."
"어디 좀 보자."
"가방 안에 있어."

녀석은 늘 그래왔듯이 마루에 가방을 휙 던져 놓고 뭔가 놀 거리를 찾아 나섭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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