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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하기 위해 가난해지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1 조회수929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28 주일 - 사랑하기 위해 가난해지다

 

              

 

이번 방학에 저희 집안과 잘 아는 한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몇 년 만에 온다니까 어머니께서는 삼일 전부터 음식준비를 하셨다고 합니다. 하루는 장을 보고 이틀은 음식장만을 한 것입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으시고 방바닥에 누우셔서 한참을 생각하신 후 큰 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쩌니? 차린 게 없어서!”

사랑하면 아무리 주어도 모자란 법이고 주고 나서도 더 주지 못해서 아쉬운 것입니다. 이는 사랑의 본질 안에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내어주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을 포기하고 내어줄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부자 청년이 달려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여쭙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에게 십계명을 지켰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첫 번째로 지켜야 하는 것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주일을 거룩히 지내고,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을 하지 않는 십계명에 나오는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주 이 계명들을 어겨서 고해성사를 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자신은 지금까지 이런 계명들을 잘 지켜왔다고 말합니다. 정말 대단한 청년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스럽게 보시면서도 그의 기를 살려두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머리를 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시며 모든 재산을 팔고 당신을 따르면 하늘에서 큰 보물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일은 구원받기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아닙니다. 이 청년이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에 갔다면 정말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십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다만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옥에서 단련을 좀 받았겠지요.

조금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짐짓 ‘이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부자 청년을 슬프게 만드신 이유는 바로 현대의 신앙인들 가운데서도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다 내어놓으려 할 줄 알거든 주님을 위해서 포기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는 증거는 그 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포기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만으로 능히 만족하여 세상 다른 것들을 원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가난’입니다.

 

그러면 그 반대로 부자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만을 부자라 하지 않으십니다. 부자란 하느님이외의 세상의 어떤 것이든 간에 집착이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루카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이 아니라, 그냥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행복지수 1위의 나라는 가난한 방글라데시고 경제 대국을 꿈꾸는 우리나라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돈은 많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역시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물질적으로도 또 마음도 가난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지극한 행복이고 불교의 교리로 말하면 해탈이고 열반이며 극락입니다. 불교에서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해탈에 이른다고 하는 말이나 그리스도교에서 (마음이) 가난해야 하느님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이나 사실 같은 뜻입니다.

불가의 교리는 사성제, 즉 고집멸도(苦集滅道)가 핵심입니다. 고(苦), 즉 인생은 곧 고통입니다. 집(集), 왜냐하면 무엇에 자꾸 집착하고 모으려하기 때문입니다. 멸(滅), 따라서 이 집착을 멸하면, 도(道), 즉 깨달음의 길, 해탈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이 진리를 깨닫고 성불한 것이고 지금도 많은 승려들이 이 도를 깨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앉아 수행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그들은 열반에 드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無所有)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며칠 동안 여행을 하는 중에 자신이 아끼던 화분이 집에 있어 물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줄곧 그것에 대해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스님은 그 화분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고 그 때 비로소 큰 자유를 얻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는 무언가를 버리니 해탈에 이른다는 불가의 교리를 잘 체험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해탈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는 작은 실 하나가 다리에 매여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날지 못합니다. 완전한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완전히 집착을 끊어야합니다. 이 부자청년이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재산에 집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에서 집착하는 것이 비록 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려자들은 자신들이 덮고 자는 신문지 때문에 서로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자 때문에 그 사람을 얻지 못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집착이 있는 사람들은 참 자유와 참 행복은 영원히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무언가에 자꾸 집착하여 가난해지지 않고 부자가 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세상 것에 집착하는 원인이 바로 열등감에 있습니다. 열등감은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감정인데 얼핏 보면 겸손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야 한다는 교만에 바탕을 두고 있는 감정입니다.

사람은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일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남자 같은 경우는 운동을 열심히 하여 남을 이기려 한다든가, 혹은 인기를 독차지하려고 한다든가, 세상에서 성공하려 한다든가, 또 돈을 많이 벌어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합니다.

즉, 재산을 포기하지 못했던 부자 청년은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부자라는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는 집이 부자였지만 오늘 탕자의 비유를 듣고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세상 것을 버릴 줄 알 때에 하느님을 갖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은 분입니다. 사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세상 것을 취하려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적 가난은 불교에서처럼 그저 집착을 끊고 공으로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이란 가난해지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채우기 위하여 다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입니다.

저도 강론을 올리거나 그래서 신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자주 반문해봅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으로 봉헌해야 할 것이 이 애정이란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모님께서 찾아오실 때 매번 매정하게 내치셨습니다. 이는 사랑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하느님으로 자신을 채우지 않으면 사랑이 부족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 인간적 애정을 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포기한 것들은 백배로 갚아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그 안에서 돈을 축적하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하고,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장으로 삼으려 하고, 어떤 성취감을 느끼기 위한 장소로 여기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리고 매일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혹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여 부자 청년처럼 아직도 세상 것과 하느님을 동시에 잡고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지 묵상해 보아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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