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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6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1 조회수39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28주일]

<가진 것을 팔고 나서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30<또는 10,17-27>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모든 율법을 충실하게 지킨 어느 청년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율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구원받지 못하므로 바로 '부족한 것 하나'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 하나'는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자식들을 교육시켜서 출가도 시켜야 하고 안정된 노후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재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줄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습니다.

'가진 것을 팔아라'와 '가진 것을 다 팔아라'는 분명히 다릅니다. '가진 것을 팔아라'는 말씀은 필요이상으로 가진 것은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라'하셨으므로 루카 복음서의 이 말씀(루카 18,22)을 묵상할 때에는 '다'가 삽입되어 혹시 '무소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하고 다른 복음서와 비교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늘 복음을 '무소유'로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런 의미보다는 우리 주위에는 가난한 이들이 많이 있음에도 필요이상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재물을 모으는 이유는, 한 달 벌어서 한 달 사는 처지이지만 사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자식들의 교육과 노후 생활을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교육비에서 해방되자 이번에는 혼사시킬 일이 걱정입니다. 둘째는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하신 말씀은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여야만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으며, 육신이 부활한다고 하므로 육신의 부활도 할 수 있습니다. 설사 천당이 없다 하더라도, 육신의 부활이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죽고나서도 욕은 얻어먹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을 흔히 '믿음의 종교'라 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어야 말씀을 실천할 수 있으므로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실천과는 무관하게, 말씀은 하나도 몰라도 상관없으므로 교회에만 열심히 나오고, 교회 지도자들이 얘기하는 것은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하여도 무조건 믿는 것이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겉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믿음이 없는 자로, 신자의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본당 미사의 강론 중에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똑똑한 사람은 성당에 나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똑똑하면 뭐 하러 성당에 나와서 신부의 강론을 듣고 있냐고 하였습니다. 어떤 연유에서 이런 강론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론 중에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지금도 강론 중에 들었던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모든 종교는 거의 모두 내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모든 종교는 내세관을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실제 사후 세계가 있기 때문에 내세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또 하나는 사람의 구실을 하라는 사실을 설득시키기 위한 필요 때문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벌을 받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선량한 사람은 이용만 당하거나 바보취급을 받고 있으며 부도덕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호의호식하고 있으므로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는 내세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도, 천당에 가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사람의 구실을 하기 위해서라는 당위성만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선행이라도 실천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며 혹시라도 무슨 대가를 바라고 선행을 하였다면 생각하였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는 알게 모르게 어떤 보상심리를 심어주고 있었으므로 앞으로는 사람의 구실을 하게끔 당위성을 심어줘야 합니다.

이천년 전 무지몽매한 사람을 계몽시키는 방법과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현실은 이천년을 이어온 전통만을 고수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우리 교회의 미래가 걱정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적은 이단의 준동이 아니라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성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이단논쟁 놀음을 하고 있으므로 중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세상은 합리적 사고로 급변하고 있으므로 대세를 거역할 수 없는 것이며 중세 천년의 변화보다 앞으로 백년의 변화가 더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또한 중세에는 성직자들이 최고 식자층이었므로 무지한 민중들은 성직자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중세의 유산들은 청산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비를 실천하면 우리의 어떠한 완고한 모습도 봄날의 눈처럼 모두 녹아 없어지고 율법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현상태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비의 실천을 최고가치로 삼아야하고, 예수님의 숭고한 가르침이 왜곡되지 않고 세세대대로 영원토록 이어져서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들도 하느님의 나라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필요이상의 재물은 팔아서 가난한 이에게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갈수록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주위에는 점심을 굶는 어린 새싹들이 많이 있음에도
곡간에는 곡식이 썩고 있음에도 곡간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미사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할 것은,
자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하도록
자비의 성령님을 저희와 우리 교회에 가득 부어주시옵소서!
영원한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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